● 일 자 : 2022. 6. 5 (일) 오후
호남지방은 온종일 비가 내렸다.
주차공간이 넓은 서문주차장에 주차하고 서문으로 들어갔다.
↑ 길 건너 서문
아침 부터 쏟아지는 비는 긴 가뭄으로 말라버린 대지를 조금씩 적셔주는 것 같다.
오전엔 손녀랑 우중에 선친 묘소에 다녀오느라 풀밭을 거닐어 신발이 흠뻑 젖었다.
그런 상태로 우산을 받쳐든채 보물 찾기를 시작해 본다.
광한루원(廣寒樓苑) : 명승 제33호
남원의 춘향과 이도령이 만났다는 광한루와 오작교 등 주변을 둘러 싼 정원을 통칭하여 광한루원(廣寒樓苑)이라고 한다.
광한루원은 광한루(廣寒樓)를 비롯한 완월정(玩月亭), 영주각(瀛洲閣), 방장정(方丈亭), 오작교(烏鵲橋) 등 조선시대 지방관아에서 조영(造營)한 관아원림(官衙園林)이다.
1983년 사적 제303호로 지정되었다가 2008년에 해제하고 명승 제33호로 지정되었다.
오작교(烏鵲橋)
옥황상제의 딸 직녀(織女)와 소몰이 견우(牽牛)의 사랑은 옥황상제의 노여움을 사 은하수를 사이에 두고 동쪽과 서쪽으로 갈라져 매년 칠월칠석날에 한번 만남을 허락 받아 애틋한 사랑을 나눈다는 전설속의 오작교.
오작교(烏鵲橋) 는 견우와 직녀가 서로 만날 수 있도록 까마귀와 까치가 은하수 위에 만든 다리로 까마귀오(烏), 까치작(鵲), 다리교(橋)자를 쓴다.
이곳 오작교는 선조15년(1582)에 송강 정철이 전라관찰사로 있을 때 남원부사 장의국(張義國)이 광한루를 수리하면서 요천(蓼川) 물을 끌어다 호수를 만들어 은하수를 상징케하고 그 위에 다리를 놓아 오작교라 이름 붙인 것이다.
광한루(廣寒樓) : 보물 제281호
조선초기 1419년 황희 정승이 이곳 남원으로 유배되었을 때 누각을 짓고 광통루(廣通樓)라 했다.
1444년 전라관찰사 정인지(鄭麟趾)가 주변 경치가 아름다워 전설 속의 달나라 궁전 광한청허부(廣寒淸虛府)를 닮았다 하여 광한루(廣寒樓)라 고쳐 부르게 되었다.
그 때의 건물은 1597년 정유재란 때 불타 버렸고 현재의 건물은 1626년 남원부사 신감(申鑑)이 복원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정면 5칸, 측면 4칸의 팔작지붕 건물로 보물 제281호로 지정되어 있다.
우산을 받쳐들고 호수에 커다란 잉어들이 노니는 걸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 한가롭다.
경복궁의 경회루를 제외한 남원의 광한루를 비롯해 진주의 촉석루, 밀양의 영남루, 삼척의 죽서루, 평양의 부벽루, 무주의 한풍루 등은 모두 지방관아에서 지은 누각이다.
광한루는 촉석루, 영남루, 부벽루와 더불어 우리나라 4대 누각으로 손꼽는다.
광한루 뒷 모습이다.
湖南第一樓(호남제일루)라고 편액이 걸려 있다. 호남에서 제일가는 누각이라는 뜻이다.
누각엔 들어가지 말라고 되어있다.
방장정(方丈亭) / 영주각(瀛洲閣)
송강 정철이 전라관찰사로 있을 때 광한루 앞 호수에 방장산(지리산), 봉래산(금강산), 영주산(한라산)을 삼신산이라 하는 삼신도를 조성했다고 하며 지금 세워진 정자나 누각은 1963년 광한루원 확장정화계획에 따라 건축된 것이라고 한다.
방장정(方丈亭)
↑영주각(瀛洲閣)
영주각 편액은 왼쪽편에 걸려 있는데 살펴보는걸 소홀히 하고 말았다.
이곳 비석들은 옛날 남원과 인연을 맺은 부사(府使), 관찰사(觀察使), 어사(御史) 들의 사적비(事蹟碑)와 선정비(善政碑) 등이다.
남원시내 여러곳에 흩어져 있던 것들을 이곳에 옮겨 놓은 것이다.
↑府使 成安義 善政碑(부사 성안의 선정비)
성안의(成安義 1561~1629)는 조선시대 문신이다.
이 비석은 성안의가 1607년(선조40)에 남원 부사로 부임하여 4년여 동안 베푼 선정(善政)을 기리기 위해 1611년(광해군3) 8월에 세운 것이다.
※ 성안의는 이도령의 실존 인물이라고 알려진 성이성의 부친이다.
춘향사당(春香祠堂)
춘향전은 설화를 소재로 한 작자, 연대 미상의 고전소설이다.
그런데 남원시에는 이곳에 춘향사당이 있고 이곳으로부터 동쪽으로 8.5km가량 떨어진 주천면 호경리에 춘향의 묘 등 춘향과 관련된 유적들이 있다.
또 매년 5월에 춘향제가 열리고 있어 춘향이 실존 인물인가? 하는 착각에 빠지게 된다.
근래 춘향전에 나오는 이몽룡이 실존 인물이라는 설이 있다.
남원 부사였던 성안의(成安義1561~1629)의 아들 성이성(成以性1595~1664)을 모델로 삼았다는 설이다.
물론 작가가 어느 실존 인물을 모델로 삼았을 수 있다.
그러나 춘향전은 역사적 사실과 허구가 함께 엉켜져 있는 소설임엔 틀림없다.
춘향은 마음씨가 곱고 절개가 곧은 여인의 상징이다.
춘향이 실존 인물인지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확인된 바 없다.
사당의 영정도 그렇지만 춘향의 묘도 1962년에 「서옥녀지묘」라고 세겨진 지석이 발견된 곳에 남원시에서 「마고열녀춘향지묘」라는 비석을 세워 묘역을 단장했다고 하기 때문이다.
버드나무 : 수령 540년
팽나무 : 수령 465년
玩月亭(완월정)
1971년네 세운 수중 누각으로 달구경 한다는 뜻의 정자이다.
춘향제 등 행사 때 공연 무대로 활용되고 있다.
누각 내부에는 사방으로 많은 편액들이 걸려있다.
춘향전 (春香傳)
학교시절 금준미주는 천인혈이요~ 하고 암기했던 기억이 떠 오른다.
춘향전을 아주 짧게 요약하면 대략 다음과 같다.
퇴기(退妓) 월매의 딸 성춘향이 광한루에 그네를 타러 나갔다가 사또의 아들 이몽룡을 만나 인연을 맺고 평생 같이하기로 약속한다.
둘은 남모르는 사랑을 계속하던 중 이몽룡의 부친이 서울로 자리를 옮기며 서로 헤어지게 된다.
춘향은 마음씨가 곱고 절개가 곧은 지조있는 여인이다.
새로 부임한 신임 사또 변학도가 춘향에게 수청을 강요하지만 죽기를 무릅쓰고 변 사또의 요구를 거절한다.
춘향은 결국 옥에 갇혀 죽을 위험에 처한다.
이무렵 이몽룡이 남원에 나타나 변사또의 생일날 암행어사로 출두하게 되고 춘향의 목숨을 구하여 평생을 행복하게 산다는 이야기다.
소설속에서 독자의 심금을 통쾌하게 울려주는 장면이 암행어사 출두 대목이다.
변 사또의 생일을 맞아 고을 수령들이 모여있는 잔치좌석에 남루한 옷을 입은 선비가 나타나 자신에게도 음식을 달라고 한다. 즐거운 잔치 분위를 생각하여 변사또는 걸인같은 선비를 쫓아낼 심산으로 선비에게 시 한수 잘 지어 올리면 음식을 준다고 한다.
선비는 지필묵연(紙筆墨硏)을 달라고 해서 7언절구로 시를 지어 올린다.
金樽美酒千人血 금준미주천인혈
玉盤佳肴萬姓膏 옥반가효만성고
燭淚落時民淚落 촉루락시민루락
歌聲高處怨聲高 가성고처원성고
(금동이의 아름다운 술은 일만 백성의 피요
옥쟁반의 맛있는 안주는 만 백성의 기름이라
촛불의 눈물 떨어질 때 백성 눈물 떨어지고
노랫소리 높은 곳에 원망 소리 높았더라.)
이어서 암행어사 출두 장면이 전개된다.
春香館(춘향관)
춘향전을 기반으로 제작된 영화, 뮤지컬, 오페라, 창극 등을 소개하고 관련 소품과 유물이 전시되어 있으며 광한루원내 건축물 영상 등 다양한 정보를 제공 하고 있다.
(빗속에서) 춘향이처럼 그네를 타보고 싶다는 손녀.
월매(月梅)집
춘향전의 월매가 살았던 본채와 춘향이 살았던 부용당, 행랑채를 모두 재현한 것이다.
● 안 내 지 도
비내리는 휴일인데 광한루원 관람객은 의외로 많더란 생각이다.
준비하고 여유를 갖고 왔더라면 가봐야 할 곳이 더 많이 있는데 남원의 케릭터 춘향이와 이도령만 떠올려 보고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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