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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승지와 유적지를 찾아

[단양] 소백산 구인사(救仁寺)

by 성 환 2020. 11. 6.

 

연화지(蓮華地) 명당에 자리한 구인사(救仁寺)

구인사는 대한불교 천태종의 총본산 사찰로 

충북 단양군 영춘면 백자리 132-1(구인사길 73)에 위치하며 

소백산 구봉팔문의 산록(山麓) 영주봉(수리봉) 아래 백자동(栢子洞) 계곡의 금계포란형(金鷄抱卵形) 명당자리인 연화지(蓮華地)에 안겨 있다.

구인사는 1945년 5월 천태종 중창조(重創祖)인 상월스님이 「억조창생 구제중생 구인사(億兆蒼生 救濟衆生 救仁寺)」로 명명하고 칡넝굴로 얽어 만든 초암(草庵)에서 시작된 사찰이며 1967년 1월 500여년 간 은몰(隱沒)되었던 천태종을 이 땅에 다시 중창시킨 도량이다.

구인사는 법화경(法華經)을 소의경전(所依經典)으로 한 천태교의(天台敎儀)만이 말법시대(末法時代)를 제도할 유일한 길임을 천명하고 천태종 중흥을 선포하고 종단으로 등록을 함으로써 역사의 전면에 다시 등장, 애국불교ㆍ대중불교ㆍ생활불교를 3대 지표로 하여 새불교운동을 전개, 오늘에 이르고 있다.
구인사는 승려들이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수행하는 주경야선(晝耕夜禪)의 실천을 통해 자립적으로 사원경제를 운영하고 있다.

단일 사찰로는 국내 최대의 신도 수를 보유하고 있으며, 국내 최대 규모의 관음도량으로 알려져 있다.

인사는 현재 5층 대법당(설법보전)과 관음전, 대조사전, 천태역대조사전을 비롯하여 대중들의 수행공간인 인광당, 관성당, 광명당, 향적당, 도향당 등 50여동의 건물들이 아름다운 단청을 입고 사계절 소백산의 자연과 어우러져 장엄한 연화도량으로 빛을 발하고 있다.

 

 

 


● 일 자 : 2020. 11. 5 (목)

 

↑이곳은 주차장이다.  주차요금은 차종에 따라 다르고 승용차는 3,000원이다.

 뒷쪽으로는 음식점 등 상가들이 있고 앞의 건물은 불교천태 중앙박물관(佛敎天台中央博物館)이다.

주차장에서 구인사까지는 1km 정도 더 올라가야 한다.  신도들을 위한 셔틀버스가 운행되고 있어 그 버스를 이용하면 시간을 줄일 수 있다. 버스 요금은 무료이고 내려올 때는 버스운행이 지원되지 않기 때문에 도보로 내려오거나 택시를 이용할 수 있다. (택시요금은 기본요금이다. 11월 현재 3,300원)

 

 

 

 

↑東文堂(동문당)이라고 현판이 걸린 이 건물 아래에 「구인사 시외버스터미널」 매표소와 대합실이 있다. 

영월, 단양, 제천, 동서울 등 여러 지역으로 운행되는 로선이 있나보다. 

셔틀버스는 이곳까지 운행되고 여기에서 부터 걸어 올라 간다.

 

 

 

일주문까지 2~300m를 걸어야 하고 계속 오르막 길이다.

 

 

 

↑小白山救仁寺(소백산구인사)

 

 

 

여느 사찰과 다른 점은 오르막길, 협곡, 웅장한 건물에 압도되는 것이다.

 

 

 

↑觀性堂(관성당)

 

 

 

 

 

↑天王門(천왕문)

 

 

 

↑남쪽을 지키는 증장천왕(增長天王)과 서쪽을 지키는 광목천왕(廣目天王)

 

 

 

↑북쪽을 지키는  다문천왕(多聞天王)과 동쪽을 지키는 지국천왕(持國天王)

 

 

 

↑사천왕문에서 내려다 본 관성당

 

 

 

↑仁光堂(인광당)

사람들이 구인사에 오면 이건물을 보고 그 웅장함에 가장 놀란다고 한다.

 

 

 

인광당 우측(아래)은 도서관↗

 

 

 

↑大韓佛敎天台宗 總務院(총무원)

총무원 산하에 총무부, 교무부, 교육부, 재무부, 사회부, 규정부, 기획실 등 6부 1실을 두고 천태종의 행정을 주관하고 있다.

 

천태종(天台宗)

천태종은 중국 수나라 때 지자(智者 538~597) 대사가 법화삼매를 증득하여 <법화경>을 중심으로 5시(時) 8교(敎) 교관과 일심삼관(一心三觀)의 수행법을 정립하며 형성되었다.

지자 대사가 활동했던 지역이 천태산이었으므로 지자 대사를 천태대사라 부르고, 대사에 의해 설해진 종파라 하여 천태종이라 불리게 되었다.
우리나라에 천태종이 들어온 것은 고려시대 대각국사 의천(義天 1055~1101) 스님에 의해서이며 조선의 숭유정책에 의해 500여 년의 침체기를 겪은 천태종은 1945년 상월원각 대조사에 의해 중창되었다.

즉 천태종은 중국의 천태지자대사께서 창도한 종지를 바탕으로하여 의천대각국사께서 개립한 고려 천태종을 원류로 하고 조선시대에 낙맥되었던 종지를 상월원각대조사께서 重創한 천태종이 현재의 대한불교천태종이다.

 

 

 

 

 

↑삼층석탑(진신사리탑)

코끼리상을 기단으로 한 삼층석탑에는 2대 종정 대충스님이 1983년 인도 성지 순례 당시 사위성 기원정사에서 친히 모셔온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셨다고 한다.

탑의 높이는 6.5m

 

 

 

 

↑종단문장

세개의 청색원을 포개어 놓은 삼제원융 위에 황색 금강저(金剛杵)를 상하로 세워 놓은 것이 천태종의 상징물인 종기(宗旗)이다.

 

 

 

↑觀音殿(관음전)

 

 

 

↑香積堂(향적당, 식당)

향적당의 점심공양 시간은 11:30~ 13:30 이다.  그러나 코로나19로 중단되었단다.

 

 

↑說禪堂(설선당)

 

 

 

 

↑光明殿(광명전)

 아랫층 현판에는 광명문이라 씌여 있어 들어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6층이던가? 무작정 올라가 봤다.

아래 그림은 광명전 위에서 내려다 본 모습이다

 

 

 

 

↑광명전 상층부와 평면을 이루는 곳이다.  광명전을 나오면 아주 넓은 광장이 펼쳐지는데 맨 처음 눈에 들어오는 모습이 「대조사님 탄신 100주년 기념 법등」과 좌측으로는 대조사전이 있다.

 

 

 

↑大祖師殿(대조사전)

대조사전은 한국 천태종 중창조인 상월원각 대조사의 존상을 봉안한 곳이다.

내부 사진촬영을 금지한다는 표지판이 있어 참배객들이 드나드는 우측의 열린 문으로 살짝 들여다 봤다.

상월스님의 존상이 석가모니의 자세를 취하고 있다.

외형은 3층으로 보이지만 내부는 지붕까지 탁 트인 통층구조라고 한다.

 

↓아래 그림은 상월원각대조사의 존상을 누군가 촬영한 것을 캡쳐한 것이다.

 

 

↑↓건물 우측에 上月圓覺大祖師殿創建功德碑(상월원각 대조사전 창건 공덕비)가 있고  좌측엔 상월스님의 敎示文(교시문)이 세겨져 있다.

 

 

상월스님의 무덤인 적멸궁까지 찾아가 보자.

적멸궁은 대조사전을 품고 있는 바로 뒷산(수리봉)에 있다.  오르는 길은 교시문 뒤쪽으로 있다.

그곳까지는 20분 정도면 오를 수 있다고 한다.

그곳을 찾는 또 하나 특별한 이유는 구봉팔문을 바라보기 위함이다.

 

 

 

적멸궁으로 오르는길 : 비탈길은 잘 정비되어 있고 오르는 중에도 사찰 상주 신도들이 낙엽을 쓸고 있었다. 

 

 

 

↑적멸궁(寂滅宮)

 

원각(圓覺) 상월(上月) (1911~1974)

법호 : 원각(圓覺)

법명 : 상월(上月)

1911년 (음) 11월 28일 밀양박씨 영진(泳鎭)과 삼척김씨(三陟金氏)사이에서 강원도 삼척군 노곡면 상마읍리 봉촌마을에서 태어났다.

속명은 박준동(朴準東)이다.

15세에 출가하였고 중국을 여행하며 오대산(五臺山)과 보타락가산(普陀洛伽山), 아미산(峨眉山) 그리고 서장(西藏:티베트)의 불교 성지를 순례한 후 귀국하였다.

1945년 5월 소백산 자락의 연화지(蓮華地)에 초암(草庵)을 짓고 정진하였다.

6.25 전쟁시 공주 마곡사에 머물며 자비로서 교화하고 질병에 신음하는 난민을 구호하였다.

휴전 후 다시 초암으로 돌아와 공삼매(空三昧)를 체득하고 1962년 12월 대오(大悟)하였다.

중생의 교화를 발원한 뒤 병을 고치고 액을 없애며 흉함을 피하고 길함을 취하는 방법으로 영험을 보여 많은 신도의 호응을 얻었다.

그를 따르는 신도 수가 수만 명에 이르자 진속불이(眞俗不二)의 법화교지(法華敎旨)로써 생활 불교의 지표로 삼아 1967년 1월 새불교운동을 전개하기 위해 천태종을 창종하였다.

종단운영, 중생교화, 중창불사 등으로 인한 과로로 병을 얻어 “죽고 사는 것이 본래 공적(空寂)”이라는 임종게(臨終偈)를 남기고 1974년 4월 64세로 입적하였다.

불교의 전통예식인 다비(茶毘)를 행하지 않고 유언에 따라 수리봉 정상 석강(石岡)에 봉분하여 안장하였다.

구인사에서는 이곳을 적멸궁(寂滅宮)이라 한다.

 

 

 

참고로 석가모니불의 진신사리(眞身舍利)를 봉안한 사찰 당우(堂宇)를 흔히 적멸보(寂滅寶宮)이라 말한다.

상월스님을 모신 이 산봉우리를 영주봉(수리봉)이라고 하는데 네이버나 다음의 지도에는 까칠봉(709m)으로 표기되어 있다. 묘지 저쪽 편에 구봉팔문을 바라볼 수 있는 전망대가 있다하니 그쪽으로 이동한다.

 

 

 

 

↓구봉팔문 전망대에서

구봉팔문(九峰八門)은 봉우리 9개와 그 사이에 형성된 골짜기 8개를 법문(法門)에 비유하여 부르는 명칭이다.

1봉 아곡문봉

    아골문안골

2봉 밤실문봉

    밤실문안골

3봉 여의생문봉

    여의생문안골

4봉 뒤시랭이문봉

    덕평문안골

5봉 덕평문봉

    곰절문안골

6봉 곰절문봉

    배골문안골

7봉 배골문봉

    귀기문안골

8봉 귀기문봉

    새밭문안골

9봉 새밭문봉

소백산 국망봉이 북서쪽으로 뻗어내려 남한강을 만나기 직전, 충북 단양군 영춘면과 가곡면 일대에 봉우리 9개가 부챗살처럼 펼쳐져 있다. 신기한 것은 노적가리처럼 솟은 아홉 봉우리가 모두 비슷하게 생겼고, 가운데 5봉인 덕평문봉을 중심으로 정확하게 한자의 팔() 자 모형을 이룬다.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불교에 입문한 한 불제자가 이곳을 법문(法門)으로 오인해 득도를 목표로 오르려고 무수한 세월을 흘려보내고 결국 법문에 오르지 못한 채 힘과 열정을 쏟은 곳이라 하여 법월팔문(法月八門)으로도 부른단다.

후일 불제자가 오르지 못한 법문을 넘은 사람이 나타났는데, 그가 바로 구인사를 세운 상월스님이다.

상월스님은 법월팔문을 올라 국망봉(1,421m)과 신선봉(1,376m) 사이 암석에 상월이라고 새겨 놓았는데 그곳이 상월봉(1,394m)이다.

구인사는 4봉 뒤시랭이문봉과 3봉 여의생문봉 사이 연화지(蓮華地)에 자리 잡고 있다.

뒤시랭이문봉 앞의 바로 이곳 영주봉(수리봉)이 두 팔 벌려 구인사가 들어앉은 협곡을 감싸 안은 형국이다.

소백산 상월봉이 신선봉과 민봉(1,362m)을 거쳐 아홉 봉우리로 갈라지지만, 그 중심은 뒤시랭이문봉을 거쳐 이곳으로 이어진다. 특히 영주봉은 구인사를 품고 있는 산으로, 아홉 봉우리의 기운을 이어받은 산이다.

 

(상월스님은 생전에 법월팔문을 아래와 같이 풀이했다고 전한다.)

법문(法門)8문에서 시작한다.

법문에 입도 하려면 새밭에서 마음을 바르게 정하고 농부의 마음(農心)으로 돌아가 자연과 벗을 삼고 밭을 일구고 열심히 곡식을 가꾸다 보면 자연의 섭리와 우주의 변화법칙을 자연히 알게 되어

7문인 귀기의 경지에 다다르면 모든 세상 물정과 자기 수련에 관한 귀가 열려 나쁜 소리나 법도에 어긋나는 소리 남을 해하는 소리는 듣는 즉시 잊어버리고 오직 바른 소리만을 들을 수 있고 판단하는 능력이 배양되어 바른 소리만을 잘 듣게 된다.
그러면 다음 순서인 6문인 배골로 와서 열심히 배우게 되고 자기 심신을 수련하고 익히게 되며 악함을 멀리하고 선함과 진리를 몸소 실천해야 한다. 6문의 경지를 지나면 수도자의 자세가 어느 정도 정립된다.

5문인 곰절에 와서는 열심히 곰같이 일을 하며 더욱 불도에 정진하고 타인의 일을 간섭하지 아니하고 말을 삼가하여 남을 절대로 험담하지 않고 오직 자기 자각에만 정열을 쏟아야 하고 물욕을 완전히 버려야만 5문을 통과할 수 있다.
그 다음은 4문인 덕평에 와서 자기의 덕의 척도를 시험하는 덕을 펴서 가까운 이웃 친지 모든 자연인에게 베풀어야 한다. 이 때에 자기가 닦고 얻은 만큼 또는 공덕을 쌓은 만큼 결과를 처음으로 자각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진다.

3문인 여의생에 오면 여태까지 닦고 쌓은 덕이 자기의 뜻과 생각대로 이루어지고 자기가 수행하고 고행한 만큼 나 자신에게도 덕이 돌아오게 되고 덕이 펴진다.

2문인 밤실에 와서는 밤꽃이 뭉실뭉실 피어나는 연꽃처럼 열매를 맺는 결실의 문턱에 다다른다.
이때 자기가 적게 닦고 크게 얻으려는 허망, 적게 뿌리고 많이 거두려는 허욕, 열심히 일하지 않고 또 고행하지 않고 이루려는 허황된 꿈이 득도와 타락의 윤곽이 드러난다.

이곳에서 득도의 문에 자신이 있는 사람, 즉 밤꽃 같이 알찬 열매가 맺어질 사람만이 1문인 得道의 문 我尊(天上天下 有我獨尊)을 이루어 신선봉에 올라 하늘로 영혼이 승천할 수 있다는 인간의 수행방법을 산의 형상이 말해주고 있다.

그리하여 선천8(8) 후천9(9)을 이곳 소백산 구인사가 있는 곳에 심어 놓은 것이라 했다는 이야기이다.

(출처 : 단양군청 홈페이지)

 

 

 

↑좌측에서 부터 1봉 아곡문봉 / 아골문안골, 2봉 밤실문봉 / 밤실문안골, 3봉 여의생문봉 / 여의생문안골 우측의 제일 높게 보이는 4봉 뒤시랭이문봉까지 바라보고 있다.

 

 

↓그 우측으로 이어지는 봉우리는 차근차근 찾아보기 어려워 바라만 본다.

 

↑바로 앞의 뒤시랭이봉에서 윗쪽으로 따라 올라가면 신선봉과 국망봉을 거쳐 소백산의 주봉인 비로봉이 있지.

눈꽃을 보기위해 나홀로  죽령에서 부터 연화봉을 지나 비로봉까지 눈길을 종주하고 도저히 되돌아갈 시간이 없어 어의곡으로 하산하여 제9봉 새밭문봉 아래 새밭계곡에서 택시를 불러타고 죽령까지 돌아갔던 때가 생각난다.  등로를 찾지 못해 헤멘 시간까지 17km를 무려 9시간 가까이 걸었었지.

그 때가 재작년 3월 초였던 것 같다. 

  그 때 소백산 비로봉 가 보기

지금 서 있는 이곳의 높이가 709m 정도의 낮은 산인데 저 산들의 마루금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이젠 오를 수 없는 내 처지가 안타깝고 오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할 뿐이다.

 


↓내려 가면서.....

 

 

 

 

 

 

↑判道庵(판도암)

 

 

↑觀音殿(관음전)

 

 

 

 

 

 

 

 

구인사에 들어온지 벌써 2시간을 넘기며 일주문을 빠져 나가려고 보니 사찰에서 빼놓을 수 없는 대웅전(설법보전)과 범종루 그리고 구인사의 역대조사전 등 중요한  전각들을 일일이 돌아보지 못한 것 같아 아쉽다.

경내에 전각들이 50여동이나 된다고 하니 가운데 오르는 길에서 비켜 서있는 당우는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돌아 보지 않으면 지니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좁은 협곡에 꽉 들이 찬 건물들 모두 삼간초암에서 시작하였다니 감탄스럽다.

 

 

● 안내지도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보발재 전망대에서↓

오늘도 보람된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