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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승지와 유적지를 찾아

[제천/단양] 충주호 유람선

by 성 환 2020. 10. 25.

 

옥순봉과 구담봉 등 남한강 따라 펼쳐지는 절경을 관광하기 위해 충주호로 왔다.

충주나루에서 장회나루까지 왕복하는 관광선이 있다기에 충주나루에 도착하니 그 코스는 운항하지 않고 월악나루까지만 운항한다고 한다.  그러면서 관광선 관계되시는 분이 청풍나루로 가보라고 한다.  한시간 가량 달려 청풍나루에 도착하니 기약없이 빈배만 떠있다.

관광선 안으로 들어가 운항시간을 물으니 장회나루에서 2시쯤에 있을 거라며 또 그곳으로 가란다.

평일이어서 관광객이 없으니 그러려니 해야지 어찌하겠는가!

시간을 보니 10시 30분.  그 때까지 여유시간은 청풍호반케이블카에서 보내고 시간에 맞춰 도착한 곳은 장회나루 충주호관광선이 아닌 그 옆에 있는 충주호유람선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관광선과 유람선의 차이는 운항회사가 각기 다르고 관광선은 관광객을 많이 승선시킬 수 있는 대형이고 유람선은 소형이다.

 

 

● 일 자 : 2020. 10. 6 (화)

 

 

 

 

↓충주호 유람선 장회나루 운항항로 (출처 : 충주호 유람선)

 

 


 

강변 유람을 시작한다.

 

 

 

 

 

 

 

↑유람선 선착장보다 바로 위에 관광선이 보인다.

 

 

 

↑선박 주변에 노니는 이름모를 물고기들

 

 

 

↑지금 승선한 유람선은 저렇게 소형이다.

 

 

 

 

 

 

상류쪽으로 올라가고 있다.

 

 

 

 

 

 

 

 

 

 

 

↑우측에 제비봉이라고 하는 것 같다.

 

 

 

 

유람선은 상류로 올라가다 제비봉을지나 유턴하여 내려가기 시작한다.

 

 

↑저산 봉우리에 3만평의 평지가 있어 노들평지라고 한다지?

 

 

 

↑내려가면서 좌측에 제비봉. 연자봉(燕子峰)이라고도 한다.

퇴계 이황 선생은 단양 군수로 있을 때 제비봉을 아래와 같이 노래하였다.

 

「수려한 연자봉을 우러러 바라보며

흐르는 구담을 굽이굽이 살펴보네

어찌하여 병풍속의 신선을 불러내어

달빛아래 조각배 타고 함께 놀 수 있으리」

 

 

 

 

 

↑↓우측 방향

 

 

↑신선봉

 

 

 

↑유람선 후미에서 뒤돌아본 상류 모습

 

 

 

 

 

↑두향()의 묘

충주댐이 건설되기 전에 두향의 묘는 강선대 가까이 아래에 있었기 때문에 댐이 건설 되면서 물에 잠기게 되어  지금의 위치로 올려 이장한 것이다.

이황이 빼어난 경치에 그토록 감탄했던 구담봉에서 보이는 양지바른 곳이다.

 

두향의 사랑 이야기

 

두향은 다섯 살 때 아비를 잃고 열 살 때 어미마저 잃었으나 빼어난 자태를 아까워한 어느 퇴기(退妓)에 의해 길러지면서 기적(妓籍)에 올라 관기(官妓)가 되었다.

그녀는 자색이 뛰어났고 詩.書.畵에 능했으며 특히 매화와 난을 좋아했다.

몸매도 아름다웠거니와 거문고와 시문에 능하였다.

두향은 18세 되던 해 1548년 1월 단양군수로 부임해온 퇴계 이황 선생을 만나게 된다. ( 이 때 퇴계 이황은 48세)

두향은 퇴계의 고매한 인품에 매료되어 흠모와 사모의 정을 떨칠 수가 없었고 퇴계 역시 한떨기 설중매 같은 두향의 재능과 고운 품성에 빠져들었다. 그도 그럴것이 퇴계는 부인과 아들을 잇달아 잃어 가정적으로 안정적이지 못한 터라 퇴계의 빈가슴을 파고드는 두향의 정을 뿌리치지 못했을 것이다.

그들의 사랑은 너무 야속하게도 퇴계의 형이 충청관찰사로 부임하게 되어 규정(상피제도)상 그해 10월 임지를 경상도 풍기 군수로 옮겨가게 되므로 10개월 만에 이별하게 된다.

 

이별 앞에 둘이는 마주 앉았다.

먼저 퇴계가 붓을 들었다.

 

死別己呑聲(사별기탄성)

죽어 이별은 소리조차 나오지 않고

生別常惻測(생별상측측)

살아 이별은 슬프기 그지 없네.

 

두향 역시 말없이 먹을 갈고 붓을 들었다 .

그리고는 시 한수를 써내려 갔다.

 

이별이 하도 설워 잔들고 슬피 울때

어느덧 술 다하고 님마져 가는구나 .

꽃피고 새우는 봄날을 어이할까 하노라 .

 

관기이기에 두향은 따라갈 수도 없는 몸이었다.

비록 그들은 멀리 떨어졌지만 난초와 열정이라는 우물물을 서로 주고받으며 애틋한 사랑을 전했다.

퇴계가 52세 되던 해 쓴 어느 작품 끝 구절에 “거문고 마주 앉아 줄 끊겼다 한탄마라”라고 하며 두향의 마음을 위로하고 있다.

두향은 퇴계가 떠난 후 정절을 지켰고 후임 사또에게 간청하여 관기에서 탈기(脫妓)해 퇴계 선생과 자주 갔던 남한강가 강선대 옆에 초가를 짓고 퇴계 선생을 그리며 살았다고 한다.

퇴계는 이조판서를 끝으로 고향(안동)으로 돌아가 70세가 되던 11월 8일 아침 평소에 아끼던 매화분(梅花盆)에 물을 주게 하고 단정히 앉은 자세로 숨을 거두었다.

퇴계 선생의 부음을 들은 두향은 나흘간 걸어서 안동까지 찾아가 먼발치에서 조문한 뒤 다시 단양으로 돌아와 강선대 기슭에 묻어 달라는 유언을 남기고 남한강에 몸을 던져 40세의 나이로 퇴계 선생의 뒤를 따랐다.

두향의 묘는 퇴계를 향한 마음을 평생 변치 않았던 두향을 기리고자 퇴계의 후손들이 지금도 두향의 무덤에 참배하며 관리하고 있단다.

 

 

 

 

 

강선대 주변

 

 

 

강선대(降仙臺)

말목산 아래 강변에 누대처럼 생긴 넓은 바위를 말한다.

충주댐이 건설되기 전에는 강물이 흘러가는 강변에 층층으로 누대처럼 반석들이 평탄하게 펼쳐져 있어 수십명의 사람들이 앉을 수 있을 만큼 넓다고 한다.

지금은 물에 잠겨 보이지 않지만 수위가 낮아지면 볼 수 있다고 한다.

 

 

 

 

 

 

장회나루 앞을 지나고 있다.

 

 

↑내려가며 왼쪽 구담봉

 

 

 

구담봉(龜潭峰): 명승 제46호

구담봉은 단양과 제천의 경계에 있다.

깎아지른 듯한 장엄한 기암괴석의 꼭대기 바위의 형상이 거북과 같다하여 구봉(龜峰)이라했고 절벽 위의 바위가 물속에 비친 모습이 거북의 형태를 하고 있어 구담(龜潭)이라 했다고 한다.
구담봉은 수많은 묵객들이 찾아와 절경을 즐기며 시나 그림으로 구담의 아름다움을 표현하였다고 전한다. 특히 단양군수를 지낸 퇴계 이황은 「단양산수가유자속기(丹陽山水可遊者續記)」라는 기행문에서 구담봉을 극찬했다고 하며 관기 두향(枓香)과의 애틋한 사랑의 전설이 있어 건너편 말목산 자락에 두향의 무덤이 있는 건 아닐까?

 

 

유람선 가이드가 구담봉 바위에 대해서 설명을 하지만 정확하게 들리지 않는다.

 

퇴계선생은 구담봉을 아래와 같이 묘사했다.

 

「천가지 형상과 신령스레 솟은 바위는

귀신이 새긴 솜씨이고

아득히 높은 봉우리 위엔 신선이 노니는가

남쪽 바위에는 이끼조차 푸르러서 경개가 거룩하니 선경의 구곡 같네」

 

 

 

 

 

↑우측 현학봉(玄鶴峰)

현학봉이란 이름도 단양팔경도 모두 퇴계 선생이 단양군수로 재임 기간 중에 명명하고 유래된 것이다.

 

 

 

↑뒤돌아 보면 저 가운데 너머 노들평지가 있다는 곳

 

 

 

 

 

 

 

 

 

↑좌측으로 옥순봉이 다가온다.

 

 

하필이면 가장 절경인 부분에서 햇빛을 마주하게 되었다.

 

 

 

 

옥순봉(玉筍峰): 명승 제48호

옥순봉은 비가 갠후 희고 푸른 아름다운 바위들이 힘차게 솟아 마치 죽순이 돋아나듯 우뚝우뚝 솟아 있어 옥순봉이라 했다고 한다.

옥순봉은 단양팔경이면서 유일하게 제천시에 위치한다. 그러니까 단양과 청풍의 경계에 구담봉과 나란히 자리하고 있다.

옥순봉은 원래 청풍에 속해 있었고 조선 명종 때에 단양군수로 부임한 退溪(퇴계) 李滉(이황)이 청풍부사에게 옥순봉을 단양군에 속하게 해달라고 청하였으나 청풍부사가 이를 허락하지 않자, 암벽에 단구동문(丹丘洞門)이라 각명(刻銘)하여 이곳을 단양의 관문으로 하며 군 경계로 정했다고 한다.

(퇴계가 청풍부사에게 옥순봉을 달라고 한 것도 두향의 뜻이었다지?)

그 후 청풍부사가 남의 땅에 군계(郡界)를 정한 자가 누구인가를 알기 위해 옥순봉에 가보니 글씨가 힘차게 살아있어 감탄하여 옥순봉을 주었다는 일화가 있다.

단구(丹丘)는 단양의 옛 지명이다.

 

 

↑뒤돌아 본다.

가운데 우뚝 솟은 산이 말목산(710m)이다.

 

 

 

 

 

↑옥순봉

 

 

 

옥순대교를 지나고 있다.

 

 

 

 

 

 

↑계속 내려가면 청풍호 방향이다.

다시 유턴하여 장회나루로 올라간다.

 

 

 

 

 

↑어느 젊은 분이 고맙게 한장 남겨 주었다.

 

 

 

 

● 안내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