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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안도로 따라

경북 포항시 해안도로 여행

by 성 환 2016. 7. 3.

영덕군과 경계를 이루는 포항시 송라면 지경리에서 부터 해안도로를 따라 월포해수욕장과 사방기념공원을 거쳐 칠포해수욕장과 포항영일만항을 지나 내려가면 영일만 안쪽의 영일대를 비롯하여 포항여객터미널과 포항구항에 이른다.  포항의 젖줄인 형산강을 건너 포스코를 지나 임곡에서부터 호미곶까지 해안도로를 달리다 보면 아직 지도상에 표기되지 않은 「연오랑 세오녀 테마공원」이 조성중에 있고 호미곶에는 등대박물관이 있다. 호미곶을 뒤로하고 해안도로를 따라 바닷바람을 맞으며 얼만큼 내려가다보면 제법 항구다운 구룡포항을 볼 수 있으며 아름다운 양포항도 만날 수 있다.


 ● 여행일자  2016. 06. 29(수) ~ 30(목)


 ● 여행구간  : 포항 해안도로 (송라면 지경리 ~ 남구 장기면 계원리 소봉대) 약 100Km




 ● 여행 이야기




지경리 해안 마을 길가에 핀 접시꽃




↑ 자그만한 실개천을 경계로 우측으로는 영덕군이고 좌측으로는 포항시이며 바로 뒤로는 해안이다.


해안에 서서 영덕군 쪽을 바라보면 아래와 같고↓


 포항시 쪽을 바라본 모습이다.↓




↑지경항


화진해수욕장↑






화진2리 어촌의 공용및 양식어장↑




방석방파제/선착장↑


조사리간이해변↑

모래가 아닌 자갈로 되어 있는 것이 특이하다. → 해병대 상륙훈련장이기도 하다.


도로곁에 세워진 원각조사비↑





조사리 성혈바위↑

암반의 노두부분이 드러난 것으로 지름 5~10cm 정도의 성혈이 8개 있다고 하는데 풀이 자라고 있고 확인해 볼 방법도 없었다.


멀리 바라본 조사리간이해변↑


조사리방파제/선착장↑


월포방파제/선착장↑



월포해수욕장↑↓




이가리해변


이가리항




청진2리방파제/선착장



사방기념공원↑


 사방기념공원 건립 요약

 박정희 전대통령의 지시로 1973 ~ 1977까지 5개년 계획으로 영일지구에 특수사방사업을 시행했고 그 기간중 1975년 4월 17일 비바람이 몰아치던 궂은 날씨에 박정희 전 대통령이 이곳을 순시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오도마을 주민들에 의해 1977년 12월 3일 「박정희대통령각하순시기념비」가 세워졌다.   또한  경북도에서 1978년 11월 30일 「영일사방준공비」가 칠포해수욕장 입구에 세워졌다가 1993년 12월 31일 이곳으로 옮겨 세웠졌으며  사방기념공원은 이곳(포항시 흥해읍 오도리)에 사방기념의 큰뜻을 되새기고 후대에 전하고자 2007년 11월 7일 공원화 한 것이다.



朴正熙大統領閣下巡視記念碑(박정희대통령각하순시기념비)↑


영일사방준공비(迎日砂防竣工碑)↑



사방기념공원에서 바다를 바라본 모습↓

멀리 희미하게 보이는 육지는 호미곶과 동해면




오도리간이해수욕장


오도리 작도 양식장↑


해안도로에서 되돌아 본 오도리방파제와 작도양식장↑


칠포방파제/선착장


칠포해수욕장↑

 2개의 크레인이 보이는 곳은 포항영일만항


칠포해수욕장 주차장↑


곡강천↑↓





포항영일신항만(포항국제컨테이너터미널)↗


포항영일신항만은 매립/공사진행중

이곳 주민에 의하면 영일만신항이 완공될 때 철로도 건설된다고 한다.







성동훈의 돈키호테」↑

 ↓충남천안터미널 조각공원에 세워져 있는 비슷한 모양의 돈키호테를 보는 것 같다.



양태근의 「짜식들(Cheeky bugger)」↑


전망대에 올라 내려다 본 모습↓↓

포스코(POSCO)


포항여객터미널과 영일대




영일대 해수욕장


해수욕장 옆에 준비된 모래썰매장



영일대(迎日臺)

영일만의 상징, 2013년 7월 26일 지어진 대한민국 최초의 해상누각이라 한다.

해맞이의 뜻을 가진 영일대(迎日臺)의 주변은 어둠이 내리고 있다.


영일대 해안로에는 확인된 곳만 4개소에서 콘서트가 열리고 있었다.↑↓


포동! 포동! 번개 콘서트」는  매월 마지막주 수요일 저녁 7시부터 9시 30분까지 열린다고 한다.




영일대 해상누각에도 8시10분 쯤에 불이 밝혀지고↑.


잔잔한 바닷바람에 밀려오는 영일대해수욕장의 파도 건너 포스코의  불빛도 아름답게 빛나고 있다. ↑↑




인근 숙박업소에서 1박을 하고 아침 일찍 음식점에 들어가니 이른 시간인데도 많은 관광객들이 분빈다.

여객터미널을 이용하기 위한 울릉도행 관광객 들이라고 한다.

이곳 포항에서 오전 10시출항하여 울릉도 13시 도착,  울릉도 16시 출항하여 이곳 포항에 19시 입항하기를 하루에 1회 왕복(6시간) 한다고 한다.

포항여객터미널


동빈큰다리에서 바라본 포항운하↓↓

형산강으로 통하는 남쪽 방향


포항구항으로 통하는 방향↑↓



송도부두방향,  우측으로 수협 활어위판장 건


포항송도해수욕장, 平和의 女像(평화의 여상)


형산강 둔치, 건너편은 포스코, 저 멀리 포스코대교가 보인다.


좌측으로는 포항신항으로 들어가는 길,   우측으로는 호미곶으로 가는 길↗


도구해수욕장(동해면 도구리)에서

쪽의 그림은 포항신항과 포스코↑

아래 그림은 호미곶으로 뻗어가는 임곡리와 임암리로 이어지는 지형↓



도구해수욕장과 포스코로 이어지는 모습(임곡리 해안 마을에서)


입암리 어촌/방파제와 선착장


연오랑세오녀 테마공원」은 공사 진행중이어서 통행이 제한되고 있다.

(사진은 진행방향이 아닌 반대방향에서 촬영한 것으로 연오랑세오녀테마공원은 호미곶으로 향하는 좌측의 해안에 위치)



延烏郞과 細烏女 이야기

연오랑과 세오녀라는 금실 좋은 부부가 신라의 동해바닷가에 살았다.

행복한 하루를 시작하던 어느날 둘은 서로에게 좋은 일이 있을거란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하루를 시작하고 있었다.

연오랑은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바닷가에 일하러 나갔다.

아! 그런데 이게 웬일일까?

연오랑이 일하다 잠시 쉬기위해 바위위에 오르자 바위가 움직이기 시작했고 바위는 연오랑을 태우고 어느 낯선 땅에 도착했다.

그곳 사람들은 연오랑을 신이 보내준 선물이라 여기며 연오랑을 왕으로 삼았다.

연오랑이 사라지고 하염없이 슬퍼하며 기다리던 세오녀는 연오랑이 일하러 나간 바닷가로 갔다.

마침 연오랑이 벗어 놓은 신발을 보고 울며 바위로 올라간 세오녀는 연오랑이 그러했던 것처럼 바위는 세오녀를 태우고 낯선땅에 데려다 주었다.

그곳의 사람들은 신이 보내준 신녀라 여겨 세오녀를 왕에게 데려갔다. 세오녀는 왕을 보고 깜짝 놀랐고 그 왕은 다름아닌 연오랑이었다.

둘은 서로 얼싸안고 기뻐하며 행복해 했고 연오랑과 세오녀는 왜국(일본)의 왕과 왕비가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일본의 대내씨는 한국사람에게서 물려받은 것이라고 하여 한국을 사모하는 마음이 대단하다고 하는데 그 이유는 연오랑과 세오녀의 설화에서 연유한 듯 하다.


한편 연오랑과 세오녀가 사라진 신라에서는 큰소동이 일어 났다.

갑자기 하늘에서 해와 달이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신라의 왕 아달라 이사금은 신하들에게 그 연유를 알아보게 했다.

얼마후에 해와 달의 기운이 왜국으로 이동하였다는 것을 알아내고 왜국에 사람을 보내어 연오랑과 세오녀가 신라로 돌아오기를 청하였다.

그러나 이미 왜국의 왕과 왕비가 된 연오랑과 세오녀는 그 소식을 듣고 놀랐으나 가엾은 왜국의 백성들을 버리고 돌아갈 수가 없어서 연오랑은 세오녀에게 정성을 들여 비단을 짜게 한후 그것을 사신에게 주며 가지고 돌아가 제사를 지내면 해와 달의 기운이 돌아올 것이라 했다.

비단을 제단에 올리고 제사를 올리자 정말 해와 달의 기운이 돌아왔다.

신라의 왕은 기뻐하며 그 비단은 신라의 보물이니 고이모셔 오래 간직하라 명하고 그비단을 모신 창고를 귀비고(貴庫)라 부르도록 하였다는 이야기이다.



하선대(下仙臺)

동해면 입암리와 마산리 경계지점인 황옥포, 속칭 한미끼에 있는 작은 바위에 선녀가 내려와서 놀았다하여 하선대라고 한다.

또다른 이름의 먹바위는 연오랑세오녀에 얽힌 바위라는 설도 있다.




하선대 바로 앞에서는 몇사람의 해녀들이 물질하고 있다.



흥환간이해수욕장


발산1리항 (등대위치가 특이하다. 바다쪽에 붉은등대가 대부분인데 하얀등대가 바깥쪽이고 안쪽에 붉은 등대이다. 개념 정립을 하면 항구로 입항하는 기준으로 좌측이 파란불인 하얀등대이고 우측이 빨간불인 붉은 등대이다.)


위 어선의 가격은 6억이 넘는다고 한다. 포항시내의 상위급 아파트보다…

차를 세우고 어민과 함께 한참을 이야기하다 보니 이곳으로 이끌고와 삶아놓은 문어를 썰어주며 식후경을 강조한다.









까꾸리계(鉤浦溪) 독수리바위

이 지역은 바람과 파도가 심하면 고기(청어)가 밀려나오는 경우가 허다하여 까꾸리(鉤:갈고리의 방언)로 끌었다는 뜻에서 지어진 지명으로 까꾸리계라부른다. 독수리바위는 오랜 세월의 풍화작용으로 조각된 바위의 형상이 독수리의 부리를 닮았다하여 주민들에 의해 붙여진 이름이다.


이육사 청포도시비

이육사는 퇴계 이황의 후손이며 일제치하 민족저항시인으로 일제에 저항하다 17차례의 감옥을 드나들었던 인물이다.

조국광복을 앞둔 1944년 1월 중국 북경감옥에서 41세의 짧은 일기로 옥사하셨다.

시인은  1937년 포항 송도에서 요양한 적이 있고 그 무렵 당시 유명한 일월지에서 영일만을 바라보며 떠오른 시상이 청포도였으며 

 「 하늘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  흰돛단배가 곱게 밀려서 오면 1939년 발표된 명시가 청포도이다


대보항


호미곶 해맞이 광장

영일만 호미곶 일출 불씨

새 천년이 시작된 2000년 1월1일 영일만 호미곶의 첫 햇빛으로 채화한 불씨가 있다.


延烏郞 細烏女像(연오랑세오녀상)




호미(虎尾)곶은 한반도를 호랑이의 형상으로 볼 때 꼬리부분에 해당한다하여 붙혀진 이름이다

호미곶은 한반도의 최동단(最東端)에 위치하며 연중 가장 먼저 해가 떠오르는 곳으로 새해 첫날 가슴벅찬 소망을 기원하는 성지(聖地)자리매김한 곳이다.




↑호미곶등대/경상북도 기념물 제 39호


국립등대박물관


호미곶에서 구룡포방향의 해안도로


석병리방파제/선착장


삼정해수욕장


구룡포해수욕장↑↓




구룡포항↑↓




장길리 해상낚시공원


구평리항


저 마을은  모포리(牟浦里)↑


저 쪽으로는 영암리 마을


대진간이해수욕장



신창간이해수욕장



양포항


소봉대(小烽臺)↑

이 곳은 작은 봉수대가 있었던 섬으로 경치가 아름답고 어종이 풍부하여 전국 각지에서 많은 낚시꾼들이 찾아오며 주 대상어종으로는 노래미, 우럭, 가자미, 학꽁치 등이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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