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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산 작은산

[금산] 진악산(進樂山)

by 성 환 2026. 4. 9.

 

 

 

 


● 산행일자 : 2026. 4. 8(수)

● 산행코스 : 보석사주차장 - 보석사 - 도구통바위 - 물굴봉 - 진악산 정상 - -원점회귀(주차장)

    ▶ 산행거리 / 사용시간 : 8km / 4시간 40분

↑ 보석사주차장

 

↑ 進樂山寶石寺(진악산보석사)

 

의병승장비(義兵僧將碑)

보석사입구에 있다.

내부 비석에는 義兵僧將(의병승장)이라고 씌여있다.

의병승장비는 1592년(선조25) 8월 18일에 있었던 제2차 금산전투에서 의병장 조헌(趙憲)과 함께 순절한 승병장 영규대사와 승병들을 추모하기 위해 1839년에 세워진 비(碑) 이다.

비각 옆에는 비문의 내용을 한글로 풀어서 청동판에 새긴 영규대사 의선각비가 있다.(아래 사진)

靈圭大師 毅禪閣碑(영규대사 의선각비)

 

靈圭大師 毅禪閣碑

영규(靈圭)의 성은 밀양박씨(密陽朴氏) 호는 기허당(騎虛堂)이었다. 그는 서산대사(西山大師) 휴정(休靜)의 제자로 불문에서 깊은 학문을 쌓았고 공주(公州) 청련암(靑蓮庵)에서 오랫동안 거주하였다. 대사는 평소에 뛰어난 힘이 있었으며 지팡이로 무술을 연마하기를 좋아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 임금이 피난길에 올랐다는 소문을 듣고 대사는 통분함을 견디지 못하여 사흘 동안 통곡을 계속하였다. 마침내 관가에 들어가서 의병장으로 나서기를 자청하였더니 공주목사(公州牧使) 허욱(許頊)은 그의 장한 의기에 감복하여 이를 허락하였다. 대사는 곧 승병(僧兵) 수백 명을 모집하여 다른 방어장(防禦將)들과 함께 청주(淸州)에 침입한 일본군과 싸웠다. 관군은 모두 패하여 달아나고 대사가 거느린 의병만이 적과 맞서 싸우는데 마침 의병장 조헌(趙憲)이 의병을 거느리고 달려오니 마침내 청주 서문에서 적군은 몰래 달아나게 되었다. 이때 조헌이 금산(錦山)에 들어온 적군을 진격하려 하므로 대사는 이를 말렸으나 듣지 않았다. 대사는 조공이 혼자서는 죽게 할 수는 없다 하고 그대로 함께 따라나섰다. 금산읍에서 십리쯤 되는 지점에 이르렀을 때 마침 비가 쏟아져서 우리 군대는 미처 진지를 구축하지 못했다. 대사는 전쟁이란 준비태세가 갖추어진 뒤에라야 후환이 없는 것이니 너무 서두르지 말고 먼저 태세를 정돈한 뒤에 싸우자고 하였으나 조공은 “적의 병력은 우리 힘으로서는 도저히 상대할 수가 없소. 나는 다만 군대들에게 충의의 정신을 고무하여 의기로 적의 기세를 꺾으려는 것뿐이요.”라고 하며 싸울 뜻을 굽히지 않았다. 이튿날 새벽에 적군이 습격해 왔는데 아군은 병력이 약할뿐더러 후속 부대가 이르지 않아 조공이 전사하고 전군이 모두 죽었다. 어떤 사람이 “적군이 이렇게 몰려드는데 왜 빨리 이곳을 떠나지 않느냐.” 하였으나 도리어 대사는 그를 꾸짖으며 “이제는 다만 죽음이 있을 뿐이다. 어찌 살기를 도모하겠느냐.”고 하며 더욱 힘을 내어 싸우다가 또한 장렬하게 순절했다. 이때는 선조(宣祖) 25년(1592) 8월 18일이었다. 정부에서는 대사가 나랏일에 목숨을 바쳤으므로 불교의식에 의한 화장법을 쓰지 않고 유교의 의식에 따라 장례를 치루었는데 지금 공주군 개류산(盖柳山)에 대사의 무덤이 있다고 전한다. 금산에 종용사(從容祠)가 있어 조공의 신위를 모시고 대사도 함께 제사를 드리고 있었는데 이백여 년 뒤 금상[憲宗]원년에 불교 신도 대인(大仁)이 군의 남쪽 진악산(進樂山) 서쪽 기슭에 따로 사당을 짓고 대사의 초상화를 모시고 명칭을 의선각(毅禪閣)이라 하고 대사께 제사를 받들게 하였다. 이 사무를 주관한 이는 금산 군수 조취영(趙冣永)이요. 건물을 세운이는 충청도 관찰사 충무목사 조헌영(趙獻永)이다. 원비 헌종(憲宗) 6년(1840) 우의정 조인영(趙寅永) 지음. 이 비를 세우는 데에 재정을 담당한 이는 낙봉대인(樂峯大仁) 춘담태연(春潭太演)이요. 도감(都監)은 춘파재첨(春坡載沾) 벽담쾌일(壁潭快一) 정능(正能) 두신(斗信)이요. 새긴 사람은 유필주(兪弼柱) 최광로(崔光魯) 유대주(兪大柱)다.

      1980년 9월

    문화재위원 임창순(任昌淳) 역술

    장암(長岩) 이곤순(李坤淳) 씀

 

*** 영규대사(1537~1592)

밀양박씨이며 공주에서 태어났

19세 때 계룡산 청련암에서 출가하여 묘향산에서 휴정대사 문하에 들어가 20년간 수학했고 공주 갑사로 돌아와 수도하면서 무예를 익혔다.

1592년 임진왜란 때 금산전투에서 전사하게 되는데 중상을 입은 채 현재의 영규대사의 묘소 부근까지 와서 숨을 거두었다고 전한다.

영규대사의 묘는 공주시 계룡면 유평리 산 5에 있다.

 

*** 밀양 재약산 표충사(表忠寺)내  표충사(表忠祠)에도 휴정(休靜), 유정(惟政)기허(騎虛)의 영정을 봉안하고 있다.

.

 

보석사(寶石寺)

보석사는 금산군 남이면 진악산 남쪽 기슭에 있는 사찰이다.

885년(신라 헌강왕 11년)에 조구대사가 창건하였으며 절 앞에서 캐낸 금으로 불상을 주조하면서 절이름을 보석사라 하였다고 전한다.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1882년(고종 19년) 명성황후가 다시 세웠으며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본사인 마곡사의 말사이다.

 

解脫門(해탈문)

아래층은 해탈문이고 위층은 범종각이다.

 

 

梵鍾樓(범종루)

 

 

 

大雄殿(대웅전)

이곳 대웅전은 목조석가여래삼존좌상(木造釋迦如來三尊坐像)을 모신 곳으로

석가모니불과 좌우에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 모셔져 있다.

 

 

의선각(毅禪閣)

절 마당을 사이에 두고 대웅전이 마주보이는 곳에 위치한다,

의선각은 영규대사가 공주 갑사와 보석사를 오가며 수도할 때 머물던 건물로 지금은 요사체로 사용하고 있다.

 

祖師殿(조사전)

의승장(義僧將)과 종사관 스님 14위의 위패를 봉안된 당우

* 여기에서 의승장은 영규대사를 말하며 영규대사는 칠백의총(七百義塚)에 안장되어 있다.

 

山神閣(산신각)

 

 

般若門(반야문)

 

보석사은행나무

 

 

보석사은행나무 : 천연기념물 제365호

이 은행나무는  885년(신라 헌강왕11) 조구대사가 보석사를 창건할 때 심은 것으로 1,100년이 훨씬 넘은 고령의 나무이다.

이 은행나무는 나라와 이곳 마을에 큰일이 생기면 소리를 내어 위험을 알려주곤 하였다는데 실제로 1945년 광복때와 1950년 6.25때는 소리를 크게 내어 운적이 있다고 한다.

높이는 34m  둘레는 10.7m 정도 된다.


등로에 들어서며....

 

 

 

 

저 바위가 도구통바위인가?

 

 

 

 

 

 

이리저리 아무리 보아도 도구통처럼 생긴 바위는 아니다.

 

노적봉(630m)

 

 

물굴봉

 

 

 

↑ 물굴봉(735..7m)

진악산의 최고봉이다.

 

 

물굴봉에서 바라본 남쪽

 

진악산 정상으로 보임

 

 

정상으로 향하며 뒤돌아본 남쪽 

 

 

 

↑ 서쪽

 

북서방향

 

능선길에는 이러한 짧은 암릉구간도 있다.

 

정상부

개삼저수지와 그 아래 개삼터테마공원

 

개삼터(開蔘址)

금산의 경제를 이끌어가고 있는 금산 인삼. 그 인삼을 최초로 심기 시작한 곳이 개삼터이다.

1,500여 년 전 강씨 성을 가진 선비가 노모의 병치료를 위해 물굴봉 아래 관음굴에서 기도하던 중 산신령의 현몽으로 인삼의 씨앗을 얻어 맨처음 인삼재배가 시작되었다고 하는 전설을 지닌 곳이 내려다보이는 저수지 아래 개안마을의 텃밭이다. 지금은 개삼터 테마공원으로 조성되어있다.

 

 

進樂山(진악산 732.3m) 

금산군의 서남부를 감싸고 있는 금산의 진산(鎭山)이다.

진악산은 정상에서 남쪽 물굴봉(737m)으로 이어지는 능선을 중심으로 남북으로 길게 뻗어 있고 정상에서의 조망은 시원한 편이며 금산 시가지는 물론 대둔산, 서대산, 천태산등을 조망할 수 있으며  대기가 아주 맑은 날에는 속리산과 운장산, 계룡산 등의 산줄기도 바라보인다고 한다.

오늘도 매우 맑은 날씨인데 속리산이나 계룡산은 잘 보이지 않고 민주지산줄기와 덕유산,  구봉산, 운장산 등이 관측된다.

 

 

따뜻한 봄날 나홀로 진악산을 독차지하여 정상에서 사방을 바라본다.

그 많은 명산들 중에서도 정상에서 사방을 훤히 조망할 수 있는 산은 많지 않은데 진악산은 손꼽을만 하다.

 

↓↓ 정상에서 바라본 모습들

금산읍 시가지와 멀리 우뚝 솟은 서대산

 

멀리 좌우로 길게 뻗은 민주지산

 

덕유산

 

구봉산과 운장산

 

 

천응산과 대둔산


   ☞  하  산

 

 

 

 

 

 

 

물굴봉으로 오르며 뒤돌아본 진악산 정상부

 

 

 

 

물굴봉에서 바라본 도구통바위 방향의 660고지

 

 

물굴봉에서 내려오며 귀돌아본 물굴봉

 

 

↑ 도구통바위

 

● 안내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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