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전 10월 어느 토요일 황금산 코끼리바위가 있는 몽돌해변에 다녀간 기억이 있다.
그 때 이곳을 찾아온 사람들이 많았었고 황금산에 대한 아무런 정보도 없이 서산에 있는 친구따라 산너머 몽돌해변과 코끼리바위만 보고 갔었다.
오늘은 그 때의 황금산을 다시 찾아 왔다.
↓화면캡처 : 愛山님 블로그(blog daum.net/85876)에서
● 일 자 : 2020. 11. 21 (토)
● 이동 구간 : 들머리(주차장) - 정상(황금산사) - 몽돌해변 - 코끼리바위 - 주차장
황금산 (黃金山 156m)
서산시 대산읍(大山邑) 독곶리 (獨串里) 해안에 있다.
원래 이름이 항금산(亢金山)이었다. 항금은 고귀한 금을 뜻하고 황금은 평범한 금을 뜻한다.
산 이름이 황금산으로 바뀐 것은 일제 때 바뀌었다고 하는데 금이 발견되어 황금산으로 바뀌었다는 설도 있다.
황금산은 남북으로 길게 늘어진 타원형의 섬이었다.
독곶리(獨串里)와 황금산 사이에 모래가 퇴적되어 사빈(沙濱)이 형성되면서 자연스럽게 육계도(陸繫島)가 된 것이다.
그래서 황금산 동쪽으로 석유화학단지 사이엔 육계사주와 습지, 황금못 등이 그 흔적으로 남아 있다.
육계도는 서해안 지역에서도 특히 서산지역의 섬과 육지 사이의 얕은 바다에서 모래가 퇴적되는 사주(砂洲)나 사빈에 의해 많이 나타나는 현상이다.
황금산 서쪽 해안에는 해식애(海蝕崖)와 파식대(波蝕臺)가 발달되어 있고 파도와 조류의 영향으로 침식, 풍화작용에 의한 해식동(海蝕洞)이 발달되어 있다.
산의 정상에는 산신령(山神靈)과 임경업(林慶業)장군, 박활량을 모신 황금산사(黃金山祀)가 있어 매년 마을의 안녕과 풍어를 기원하는 당제(堂祭)를 지낸다고 한다.
↑들머리
↑정상은 좌측으로 우측 계단은 몽돌해변으로 가는 지름길
↑정상으로 오르며 눈에 들어 온 바다와 지형
왼쪽 바다는 가로림만(加露林灣)이고 우측은 서해(西海)이다.
건너편 길게 돌출된 지형은 태안군 이원면 내리이며 태안반도에서 북쪽 끝으로 뻗은 이원반도(梨園半島)이다.
지형의 이쪽 편엔 만대항이 있고 가로림만을 사이에 두고 서산 벌천포와 마주보고 있다.
지형의 저쪽 편으로는 만대항에서 시작된 태안둘레길 1코스인 솔향기길이 꾸지나무골, 사목 등의 해수욕장까지 잘다듬어져 있다.
해안도로를 여행 할 때 둘레길 트레킹을 하려는 많은 사람들을 관광버스가 만대항에 쏟아 내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오르며 뒤돌아본 남쪽
멀리 섬처럼 보이는 산너머에 벌천포가 있고 가까이 보이는 산은 황금산처럼 육계도로 오배산이다.
벌천포는 왼쪽 대산읍쪽의 자용산(紫容山, 152m)에서 북서쪽으로 뻗어나온 반도의 끝에 자리잡고 있다.
벌천포에는 서산 유일의 내륙 해수욕장인 벌천포해수욕장이 있다.
황금산사(黃金山祀)
산신령(山神靈)과 임경업 (林慶業) 장군, 박활량 등 3위의 초상을 모신 곳이다.
정면 한칸, 측면 한칸의 맞배지붕 건물인 황금산사는 가로림만이 있는 남쪽을 향하고 있다.
사당 정면 처마에는 「黃金山祠」(황금산사)라고 쓴 편액이 걸려 있다.
독곶리에서는 해마다 음력 3월 중 택일한 날이나 4월 초파일에 마을의 안녕과 물길이 사나운 앞바다(황금목黃金項)에서의 안전한 항해와 풍어를 기원하는 황금산사 당제(堂祭)를 지내오다가 어업이 쇠퇴하면서 30여년 전 중단되었다가 1996년 서산시에서 황금산 정상에 황금산사를 복원한 이후 매년 봄에 제향을 올리고 있으며 이와는 별도로 어업에 종사하는 어민들이 출어를 떠나기 전에 뱃길의 안전과 만선을 기원하는 뱃고사를 지내기도 한다.
임경업(林慶業) 장군이 왜 여기에?
임경업 장군(1594~1646)은 충주에서 태어나 조선시대 인조 때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에 활동했던 기개 넘치는 무장이다.
철저한 친명배청(親明背淸)으로 명나라에 구원병을 요청하러 다닐 때 태안을 거쳐 갔기에 이곳과 연관이 있는 것 같다.이동 중에 바다 한가운데에서 생수를 구한다거나 가시나무로 조기를 잡아 군사들의 기갈을 면하게 해 주는 등 초능력을 가졌다고 전해지는 애국적 명장이 역모의 함정에 걸려 억울하게 죽임을 당하였기에 사후 영웅신으로 모시게 된 것이고 황금바다와 연평도를 오가는 조기떼를 놓치지 않으려고 임장군을 모신 연평도의 충렬사에 대립하여 이곳 황금산사에 모신것으로 추정된다.
박활량은 또 누구?
박활량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한다.
4백여년 전 황금산 앞바다는 물고기들이 풍부하여 이곳의 어부들은 남부럽지 않게 살고 있었다.
황금산 앞 갯골 건너편 자각산 아래에는 명궁수(名弓手)로 명성이 자자한 박활량이 살고 있었다. 어느 날 무예를 닦던 박활량은 잠시 쉬는 동안 마당바위에서 잠이 들었다. 꿈에 황룡이 나타나 이르기를 '나는 황금산 앞바다를 지키는 용신으로 이곳의 어부들이 지내는 고사밥을 받아먹고 살고 있노라. 그런데, 연평도에 살고 있는 청룡이 황금산 조기떼를 몰고 가려고 해 이를 막으려고 며칠째 황금산 앞바다의 하늘에서 싸움을 하고 있지만 나 혼자의 힘으로는 이기기 어렵다. 그래서 내일 새벽에 청룡을 이곳 마당바위 상공으로 유인해 올 테니 너의 활 솜씨로 청룡을 쏴 죽여 달라.'고 말하고는 홀연히 사라졌다. 이튿날 황룡은 과연 청룡을 마당바위 상공으로 유인했다. 박활량은 재빨리 청룡을 향해 활을 쏘았다. 그때 갑자기 황룡이 몸을 뒤트는 바람에 화살이 그만 황룡의 몸통에 꽂이고 말았다. 황룡은 비명을 지르며 바닷물 속으로 떨어져 죽었다. 그날 밤 꿈에 황룡이 피를 흘리며 나타나 '내가 죽은 것은 활을 잘못 쏘았기 때문이 아니라 하늘의 뜻이다. 다만 내가 애석해 하는 것은 황금목에 있는 큰 동굴이 연평도와 연결되어 있어 청룡이 이 굴을 통해 황금목 조기떼를 연평도 앞바다로 모두 몰고 가서 이곳 어민들의 생활이 빈곤하게 되었음이 한이 될 뿐이다.'라고 하였다는 이야기다.
박활량의 전설에서 보듯 임경업장군이나 박활량은 황금목(黃金項)의 조기떼를 지키려는 인물로 등장한다.
조선 후기인 17~18세기에 이미 임경업 장군은 박활량과 함께 서해안 일대에서 ‘조기의 신’, ‘풍어의 신’으로 숭앙되고 있었던 것이다.
↑황금산 (黃金山 156m)
↑내려가며 뒤돌아 본 황금산 꼭대기
몽돌해변
황금산 서쪽 해안의 몽돌해변이다.
황금산 서쪽 해안에는 해식애(海蝕崖)와 파식대(波蝕臺)가 발달되어 있고, 해식애와 파식대가 만나는 부분에는 파도, 조류에 의한 침식, 풍화 작용으로 생긴 해식동(海蝕洞)과 시아치(sea arch), 시스택(sea stack) 등이 발견된다고 하는 곳이다.
앞에 보이는 코끼리바위는 시아치(sea arch)의 형태이며 해안따라 좀 더 올라가면 해식동(海蝕洞)과 시스택(sea stack) 등의 모습을 볼 수 있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는 이유는 코끼리바위의 모습과 매끄러운 몽돌에 밀려오는 파도와 주변의 풍광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보이는 저 앞바다를 황금목(黃金項)이라고 한다.
황금목은 수심이 깊을 뿐만 아니라 간조 때 유속이 빠르고 파도가 높아서 예로부터 험한 뱃길로 알려져 있다.
↑코끼리바위 저쪽으로 넘어갈 수 있는 데크계단이 설치되어 있다. 넘어가 본다.
영광 칠산바다에서 부터 통통배를 타고 연평도까지 조기잡이를 했던 그 옛날 이곳은 조기떼가 지나는 황금어장이었다지...
↑아들과 함께
금굴이나 해식동굴이 있는 위쪽으로 더 가봤으면 좋겠으나 오늘은 여기에서 즐거운 시간을 접는다.
● 안내지도
'큰산 작은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목포 유달산 (0) | 2021.04.30 |
---|---|
[천안] 위례산 / 백제의 초도 위례성을 찾아.. (0) | 2021.04.16 |
[삼척/동해] 두타산(頭陀山) (0) | 2020.07.17 |
[구미] 금오산(金烏山) (0) | 2020.07.10 |
[포천/가평]운악산(雲岳山) (0) | 2020.07.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