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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산 작은산

[곡성] 동악산(動樂山)/청류구곡(淸流九曲)

by 성 환 2023. 4. 1.


● 산 행 일 자 : 2023. 3. 27 (월)

 

● 산 행 코 스 주차장 - 돌탑군 - 형제봉 -  대장봉 - 배넘어재 - 동악산 정상 - 도림사계곡 - 주차장

   (아래 1번코스 역방향) 

  ▷ 금일 산행거리 / 사용시간 : 10.5km / 7시간 10분

 

넓은 주차장이 텅 비어 있다.  등산로 입구는 등 뒤에 있다.

 

↑ 산행 들머리

 

관광단지 놀이시설

 

 

↑ 한적한 등로에 돌탑들이 반겨주는 듯

 

여기저기 진달래도 활짝

 

 

 

 

 

넓은 들과 곡성읍이 보인다.

 

↑올라가며 우측으로 보이는 산봉우리

동악산 정상으로 짐작된다.

 

성출봉은 또 뭐지?

 

 

여기에도 돌탑이...

 

↑성출봉인지 형제봉인지 왼쪽의 저봉우리를 경유하여 우측의 정상까지 가야한다.

 

 

 

이곳이 깃대봉?

형제봉과 돌탑군의 거리는 2km

 

 

 

성출봉과 돌탑군의 거리도 2km

형제봉과 성출봉은  한놈이네~

 

 

모질게 살아가고 있구나..

 

곡성IC 방향↗

 

 

↑저 봉우리가 형제봉

 

▲형제봉 (兄弟峰 758m)

이곳 형제봉이 동악산 수리봉(735m)보다 23m 더 높다.

길상암터와 정상을 향한 배넘어재로 가는 갈림길이다.

 

▼ 형제봉에서 잠시 주변 지형을 조망해 본다..

↑저 봉우리를 지나왔는데 .. 깃대봉인가?

 

▲ 동악산 정상으로 진행할 지형을 살펴 본다.

길상암터 방향 등로에서 정상으로 가로질러 가는 길은 없다.

왼쪽에서 이어지는 능선의 낮은 부분이 배넘어재이다.

정상으로 가기 위해서는 배넘어재로 가야하는데  산봉우리를  하나 더 넘어야 한다고 형제봉을 올라올 때 들었다.

 

↑배넘어재를 조금 당겨본다.

우측 북쪽에 동악산과 좌측 남쪽에 형제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의 낮은 안부, 즉 두 산괴(山塊)사이에 있다.

서쪽의 입면 약천리와 동쪽의 곡성읍 월봉리를 넘나드는 고갯길이다.

옛날엔 바닷물이 들어오면 배를타고 넘어다녔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이 있다.

 

 

형제봉을 넘어가며 바라본 하나 더 넘어야 할 산이 바로 우측의 산이다.

잠시 후 이정목에는 대장봉이라 표시 되어 있다.

그렇다면 왼쪽에 보이는 산봉우리는 초악산(최악산)으로 추정해 본다..

 

배넘어재와 정상 가는 능선 모습

 

형제봉과 대장봉 사이 안부

 

방금 내려온 형제봉

 

대장봉(大壯 751m)

 

 

대부분의 자료에는 최악산(最岳山)으로 표기되어 있으나 곡성 고을 주민들은 초악산(焦岳山)이라 한단다.

 

최악산 방향

 

↑배넘어재로 이동하며 좌측(서쪽)을 본다.

재너머 약천리 마을과 흑석저수지가 보인다.

 

↑배넘어재

도림사 방향으로도 어디까지인지는 알 수 없으나 임도가 설치되어 있다.

 

현위치 고도 548m

 

 

↑배넘어재에서 약천리로 이어지는 도로와  멀리 곡성 옥과면 일원 - 조선시대 때는옥과현(玉果縣)이 있었다지..

그리고 사진우측의 하얗게 보이는 곳은 곡성 입면농공단지이다.

 

뒤돌아보니 지나온 봉우리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나란히 솟아 있는 봉우리의 가운데를 중심으로 좌측이 형제봉 우측이 대장봉이다.

 

↑정상이 눈앞에 보이나 얼마나  더 걸어야 할지..

보통이면 벌써 정상을 통과 했어야 할 시간인데 난 지금 4시간 40분을 이미 사용했다.

 

정상은 그냥 내어주지 않는다. 

또 한번 저 오르막길을 올라야 한다.

 

 

 

 

계단을 오르며 왼쪽(동쪽)을 바라본다.

계곡아래 저수지가 보이고 넓은 들판 사이로는 강줄기가 휘돌아 흐르는데 섬진강이다.

 

지나온 산줄기도 더듬어 본다.

저쪽 형제봉과 이곳 수리봉 사이에 형성된  도림사계곡에는 원효동, 청류동 등 여러 지명이 있다.

 

정상이다.

 

 

동악산(動樂山 735m)

동악산은 전남 곡성의 북쪽에 위치한다.

산의 동쪽으로는 곡성읍이 있고 남쪽으로는 형제봉(758m)과 최악산(716m)으로 산세가 이어지며 북쪽으로는 섬진강이 흐른다.

그리고 남쪽 기슭  청류구곡(淸流九曲)에는 천년고찰 도림사가 웅거하고 있다.

동악산의 이름은 원효대사가 도림사를 창건할 때 온 산자락의 풍경들이 하늘의 풍악에 맞춰 춤을 추었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과  옛날 곡성 고을에서 장원급제자가 탄생하게 되면 산이 흔들리며 아름다운 노랫소리가 들렸다고 하여 붙여졌다는 설이 있다.

그래서 산의 이름 한자 표기도 흔한 岳(악)자가 아닌 樂(풍류악, 즐거울락)자를 쓴다.

 

 

두달전(1월21일)  마산의 무학산을 다녀온 이후 오랜만의 산행이어서  몹시 힘이 든다.

이곳까지 7.2km를 5시간 20분을 썼다.

이제 조심스럽게 내려가야지..

내일 강진에 있는 덕룡산을 오를수 있을지 모르겠다.

 

↑동쪽 넓은 벌판을 조금 당겨보았다.

바로 앞에 섬진강이 동쪽(우)으로 흐른다.

섬진강 북쪽은 전라북도 남원시 금지면(池面)이고 남쪽은 전라남도 곡성군 곡성읍(城邑)이다.

그래서 보이는 다리는 두곳을 이어주기에 금곡교(金谷橋)이고 북쪽으로 구불구불 도로따라 올라가면 왼쪽에 남원시가 저렇게 가까이 보인다. 

 

 

곡성읍내와 주변의 모습

 

 

 

오른쪽 계곡(도림계곡)을 따라 하산하게 된다.

 

 

 

도림사계곡에 접어들었다.

도림사계곡은 그렇게 깊은 계곡은 아니지만 계곡물이 연중 그치지 않고 노송과  (), (), 폭포 그리고 암반들이 어우러져 주변 경치가 아름답기에 예부터 풍류객들의 발길이 잦았던 곳으로 삼남 제일의 암반계류로 꼽히는 곳이다. 그래서 도림사계곡을 도림구곡(道林九曲), 청류구곡(淸流九曲)으로 부르며 전남기념물 제101호로 지정되어 있다.

 

 

가로로 小桃源이라 새겨져 있다.

그 옆에도 작은 글씨가 또 있으나 선명치 않다.

주변 경관이 중국의  도원동(桃源洞)을 많이 닮았나보다.

 

 

8曲 해동무이(海東武夷)

 

 

▼ 계곡 아래로 내려오자 암반에 새겨진 크고 작은 각자(刻字)들이 시선을 끈다. 

무이구곡(武夷九曲)에 견줄만한지는 잘 모르겠으나 언뜻 수년 전 동해 두타산 무릉계곡에 가서 보았던 무릉반석(武陵磐石)의 석각이 떠 오른다.

 

 

 

 

百世淸風(백세청풍)

BC1100년 경 중국 은나라말 주나라 초 시대의 성인 백이(伯夷)와 숙제(叔齊)의 묘비명에 들어있는 문구란다.  직역하면 「백세에 걸쳐 부는 맑은 바람」인데 영원토록 후세인들의 귀감이 되는 훌륭한 인물이라는 뜻으로 쓰인다고 한다.

 

그 밑의 각자를 보면 黃梅泉進士杖屨處(황매천진사 장구처)」라고 새겨져 있다.

황매천 진사가 다녀간 곳이란 뜻이다.

杖屨는 지팡이와 짚신을 뜻하는 것으로 杖屨處는 자리를 펴고 앉아 이곳에 있었다는 뜻을 담고 있다.

梅泉 黃玹(황현1855~1910)은  황희 정승의 후손으로 전남 광양 출신이며 조선말 우국지사로 경술국치시 자결하신 분이다.  

 

그 우측으로 

田艮齊 松淵齊 鄭小松 三先生 杖屨處 (전간제 송연제 정소송 삼선생 장구처)

전간제, 송연제, 정소송 세분의 선생이 다녀간 곳 

艮齋 田愚(전우1841∼1922), 淵齋 宋秉璿(송병선1836∼1905), 小松 鄭在健(정재건1843∼1910) 세분 모두 조선말 항일 우국지사들이며 송연제는 을사늑약시 자결하신 분이다.

 

또 그 우측으로도 많은 분들을 나열하고 있다.

 

 

 

 

 

 

도림사 앞을 지나고 있다.

다른 때 같으면 경내로 들어가 전각들은 물론 보물이 있나 찾아 볼텐데 오늘은 웬지 내키지 않아 그냥 지나간다.

 

도림사(道林寺)

구례 화엄사의 말사로 660년 원효대사가 창건하였다.

창건 당시 산이 진동하고 풍악이 울렸다고 하여 이름 지어진 동악산의 남쪽 산록에 자리하고 있다.

절의 이름도 창건할 때 도인들이(道) 숲처럼(林) 모여들었다 하여 道林寺라 이름 지었다고 한다.

내려오면서 보았듯이 절 앞을 흐르는 계곡의 암반에는 옛날 수많은 시인 묵객들이 찾았을 만큼 풍광이 아름다워 도림사 일원은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22호로 지정되어 있다. (1984. 2. 29)

 

山門(산문)에 걸린 道林寺(도림사) 현판은 남종화(南宗畵)의 화맥을 잇는 호남의 대표적인 화가 허백련(許百鍊)이 썼다고 한다. 

 

 

 

암반계류(岩磐溪流)

긴 가뭄인데도 적은 양이지만 물은 흐르고 있다.

오랫동안 머물고 싶은 곳이다.

 

 

 

계곡 건너편을 보니 암반에 새겨진 글자가 보인다.

왼쪽에 丹心臺(단심대)라는 각자(刻字)가 보이고 오른쪽 넓은 암반에 西山講論(서산강론)과 그 밑으로 작은 각자들이 있다.

이곳 청류동(淸流洞)은 구한말에서 일제강점기까지 위정척사파 선비들의 회합 장소였다고 한다.

개혁 대신 쇄국을 앞세운 한계와  망국의 설움을 의병이라는 무력 투쟁과 비밀결사로 털어내려는 우국지사들의 모임처였다는 것을  西山講論(서산강론)이란 각자가 말해주고 있다.

西山講論은 서산 선생이 강론한 곳을 뜻하며 서산(西山)은 조형일(曺衡鎰1800~1860)의 호이다.

 

암반 위나 바위의 각자(刻字)들은 다녀간 선비들이 직접 새긴 것이 아닐진대 누가 새겼는지 궁금하여 찾아보니 일제강점기 곡성의 유림인 춘기(春沂정순태(丁舜泰 ?~1916)와 하정(荷亭조병순(曺秉順 1876~1921)에 의해 1916년 이전에 음각(陰刻)된 것이라 한다.  조병순은 독립운동가이며  서산강론(西山講論)의 주체인 조형일(曺衡鎰)의 손자이다.

 

 

 

 

청류구곡(淸流九曲)은  풍광이 아름다워 풍류객들이 많이 찾았던 곳이기도 하지만  암반위에 새겨진 각자에서 보았듯 곡성의 유생들을 중심으로 전국의 우국지사들이 모여 항일운동의 전략을 모색하고 통한의 눈물을 흘리며 국권회복의 방책을 논의하는 등 여러 회합의 비밀 장소였다.

사전 정보라도 있었다면  여러곳을 좀 더 찾아보는 것인데 스치듯 지나오고보니 아쉬움이 남는다.

 

 

↑動樂山道林寺(동악산도림사)

도림사 일주문도 지나고...

 

 

 

 

 

● 안 내 지 도

♣  산 행 을   마 친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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