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행일자 : 2016. 07. 11(월)
● 산행코스 : 안내소 /청량폭포/선학정/입석(주차장) - 응진전 - 김생굴 - 자소봉/탁필봉/연적봉 - 하늘다리 - 장인봉 - 청량사 - 입석(주차장)
※ 산행거리 및 소요시간 : 약 7km / 5시간
● 산행 전 이야기
● 그제(07. 09. 토) 이 곳 청량산 산행을 위해 낮 12시경 도착했다.
선학정에 주차를 하고 배낭을 짊어진채 예정된 산행코스로 산행을 시작하려다 입석까지 거리가 0.9Km라고하여 그 곳까지 차량으로 이동하기 위해 시동을 거는데 차량에 이상증세가 나타났다. 첫시동은 힘없이 실패하고 두번째 시동이 걸렸는데 RPM이 전혀 움직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스타트마저 원활치 않았고 입석까지 이동하는데 정상이 아니라는 것이 확실히 느껴졌다.
이런 것을 방치하고 산행했다가 돌아 갈 수 있을까 걱정이 되어 일단 산행을 뒤로하고 차량 정비부터 하기 위해 가까운 봉화읍으로 향했다. 봉화읍으로 이동하는 동안 오르막길에서는 엑셀을 아무리 세게 밟아도 탄력이 떨어지고 수동기어 변속도 되지않았다. 봉화읍의 차량정비소는 이미 문을 닫은 곳만 확인 될 뿐 망연자실 무더운 날씨에 머리에서 땀만 비오듯 쏟아졌다. 벌써 시간은 오후 2시를 지나고 있었다. 연료의 지침은 반을 밑돌고 시동을 꺼 놓자니 시동이 걸리지 않으면 영영 선자리에서 속수무책일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찾아간 곳이 받데리 가게인데 받데리가 이상이 있어서가 아니라 받데리가게 사장이 차량정비부분 박사라고 할 만큼 조회가 깊다고 해서 찾아간 것이다. 이야기를 모두 듣고난 그 받데리가게 사장도 어찌할 수 없었다. 가게 앞 마당에 주말동안 주차를 허락 받았다. (이하 생략)
● 토요일의 청량산 하늘은 하얀뭉게구름이 피어오르고 있었고 요즘 보기 힘든 맑은 날씨에 햇볕이 강하게 내리 쬐고 있었다.
토요일의 일을 생각하며 한주를 보낼 수 없어 월요일(오늘) 아침 7시 반에 출발하여 청량산 산행을 위해 달렸다.
낙동강 상류의 래프팅을 즐기던 동호인들의 모습도 보이지 않고 날씨도 토요일과 비교 될 만큼 연무 같은 것이 뿌옇게 끼어 좋지 않았다.
일기예보에 의하면 내일 부터 장마가 북상하기 때문에 오늘 산행하는데는 지장이 없다는 것이 다행이다.
「봉화 선유교(奉化 仙遊橋)」아래 낙동강 상류의 강물 흐름↑
선유교(仙遊橋)
청량산 입구(낙동강, 청량교)↑
● 산행 이야기
▶ 청량산 소개
청량산은 경북 봉화군과 안동시의 경계에 위치하고 있으며 자연경관이 수려하고 기암이 많은 산으로 1982년 경상북도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고 2007년 청량사를 중심으로 공원일부가 국가지정 문화재 명승23호로 지정된 산이다. 청량산의 이름은 조선시대 때부터 불려진 이름이며 조선시대 풍기군수 주세붕이 명명한 12봉우리(또는 6.6봉)가 주축을 이루고 있으며 그 가운데 청량사가 자리하고 있다. 청량산은 산세가 깊어 역사적 인물들이 머물던 곳이 많다. 퇴계 이황이 공부했던 장소에 후학들이 세운 청량정사, 서예가 김생이 글씨공부를 했던 김생굴, 대문장가 최치원이 수도한 풍혈대,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 머물며 쌓은 산성, 그리고 원효대사 구도의 길 등이 있다.
↑道立公園 淸凉山(도립공원 청량산), 淸凉之門(청량지문), 엊그제 주인을 애타게 했던 애마(愛馬)도 잠시 대기 중이다.
退溪詩碑(퇴계시비)/思無邪(사무사)
※ 思無邪 : 마음에 조금도 그릇됨이 없이 올바름
↓淸凉瀑布(청량폭포)↗
仙鶴亭(선학정)↗
입석(立石), 등산로 입구
저 아래에서 부터 안내소, 청량폭포, 선학정, 입석으로 이어진다.↑
좌우측 모두 청량산이며 좌측은 축융봉(祝融峯)이 있고 우측에 청량산의 주봉인 장인봉과 자소봉 등이 있다.
應眞殿(응진전)↑
淸凉寺의 부속건물중 하나인 것으로 보인다.
건물 뒤쪽은 금탑봉(金塔峯)이며 중간절벽에 동풍석(動風石)이 있다고 한다.↘
왼쪽 위에 동그란 바위가 동풍석이 아닐까?↘
청량사를 품고있는 연화봉(蓮花峯)↑
연화봉과 청량사 --- 청량사는 하산하면서 둘러보기로 한다.
↑石槨墓(석곽묘)라고 한다. 삼국시대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좌측에 보이는 굴이 김생굴(金生窟)이다.↑
경일봉(擎日峯) 중층에 위치하고 있는 김생굴(金生窟)은 통일신라시대의 서예가 김생(金生)이 글씨를 연마하던 곳이다.
김생은 이 굴 앞에 암자를 짓고 10년간 글씨 공부를 하였다고 하며 9년만에 명필이 되었다는 자신감을 갖고 하산하였으나 길쌈에 능한 청량봉녀(淸凉縫女)와의 솜씨 겨루기에서 부족함을 느낀 김생(金生)은 다시 1년을 더 연마하여 10년을 채운뒤 명필이 되어 세상으로 나갔다는 설화가 있다.
가까이 들여다 본 김생굴(金生窟)↘
저 아래 청량사의 5층석탑이 보인다.↗
자소봉(紫宵峯) 840m↑
자소봉에서 둘러본 모습들↓↓
탁필봉(卓筆峯)820m↓
(붓 끝을 모아 놓은 것 같다하여 붙혀진 이름)
연적봉(硯滴峯) 840m↑
자소봉과 탁필봉 그리고 연적봉은 인접해 있으며 연적봉에서 자소봉과 탁필봉을 바라본 모습이다.↑ ↓
사진 촬영 위치가 적절치 않아 자소봉과 탁필봉이 붙어 있는 것처럼 보이나 실제는 수십m 떨어져 있다.↓
연적봉에서 장인봉을 향해 가는 도중에 바라본 모습, 우측의 봉우리가 청량산 주봉인 장인봉(丈人峯)이고 그 직전이 선학봉(仙鶴峯)이며 하얀 구조물은 하늘다리이다.
↑ 이곳 외에도 경사가 심한 곳이 여러곳 있다.
하늘다리(Sky Bridge)↑
청량산 하늘다리는 해발 800m 지점의 저쪽편 선학봉(仙鶴峯)과 이쪽 자란봉(紫鸞峯)을 연결한 길이 90m, 폭 1.2m, 지상높이 70m의 산악현수교량(山岳懸垂橋粱)으로 2008년 5월 설치 되었다.
하늘다리 위에서 바라본 절경…… 왼쪽 하얗게 보이는 것은 낙동강↑
선학봉(仙鶴峯)↑
청량산 주봉 장인봉(丈人峯) 870m↑
장인봉 표석 주위에 수목이 둘러 있고 관망대가 없어 주변 경관을 바라볼 수 없는 점이 아쉽다.
하산(下山)은 이곳으로 올라오던 뒷실고개에서 청량사 방향으로 곧장 내려가 청량사 경유 입석등산로 입구로 하산하기로 한다.
하산하면서 청량사에 들어 설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모습이다.↑
청량사 琉璃寶殿(유리보전)↑
유리보전은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47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원효대사가 신라 문무왕3년(663)에 처음 건립하였다고 전해진다.
현존하는 이 건물은 조선후기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地藏殿(지장전)↑
지장전 내에는 보물 제 1666호인 木造地藏菩薩三尊像(목조지장보살삼존상)이 모셔져 있다.
↓↓木造地藏菩薩三尊像(목조지장보살삼존상) : 보물 제 1666호
현존하는 16세기 불상중에서 종교성과 조각적 완성도를 두루 갖춘 작품이라고 한다.
이 삼존불상을 봉안한 사찰이나 작자 등이 밝혀지지는 않았으나 복장에서 발견된 발원문과 양식을 분석한 결과 이 삼존상은 1578년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 시기에 조성된 불상이 매우 드물다는 점에서 임진왜란 전후의 불교 조각의 흐름을 파악하는데 기준이 되는 아주 귀중한 자료라고 한다.
그리고 불상에서 보이는 개성있는 표현과 우수한 조형성 등을 통해서 볼 때 당대 최고의 조각가가 조성한 작품이라고 한다.
↑청량사 5층석탑/부처님사리가 모셔져 있다고 한다.
왼쪽으로 보이는 봉우리가 금탑봉(金塔峯)이다
梵鐘樓(범종루)↑
說禪堂(설선당)↑
淸凉精舍(청량정사)↑
淸凉精舍(청량정사)는 청량사를 벗어나 하산하는 도중에 있으며 오산당(吾山堂)이라고도 한다. 청량정사는 퇴계이황의 남긴 뜻을 받들어 조선 순조 32년(1832)에 창건되었다.이곳은 퇴계(退溪) 선생을 기리는 수많은 학자들의 학문과 수양의 장소가 되었고 1896년 청량의진(淸凉義陣)이 조직되어 의병투쟁의 근거지가 되기도 했던 곳이다.
수백년이 더 지나도 우린 일제가 남긴 아픈 흔적을 지울 수도 잊을 수도 없다.↑↑
같은 역사적 사실을 주왕산 국립공원에서는 달리 표현하고 있다.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
● 안 내 지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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