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경승지와 유적지를 찾아

서산 해미읍성(海美邑城)

by 성 환 2022. 10. 23.

 

 

해미읍성(海美邑城)

 

왜구의 침략을 막아내기 위해 1416년(태종16)에 덕산(德山)에 있던 충청도병마절도사영(忠淸道兵馬節度使營)을 지금의 해미읍성 지리로 옮겨오면서 성을 쌓기 시작하여 1421년(세종3)에 완공된 영성(營城)으로 충청의 군사적 거점이었다.

 

1651년(효종2)에 충청도병마절도사영이 청주로 옮겨가고 해미현 관아가 옮겨와 해미읍성이 되었다. 읍성에는 문무를 겸한 겸영장(兼營將)이 배치되어 충청도 5군영의 하나인 호서좌영(湖西左營)으로 내포지방 12개 군현의 군권까지 장악하는 호서지방의 행정중심 역할을 하였다.

영장(營將)은 도적이나 반란세력을 토벌하는 토포사(討捕使)의 임무까지 맡고 있었으므로 조선 후기 천주교 박해시기에 내포지역의 천주교 신자들이 이곳으로 끌려와 죽임을 당하는 순교의 역사적 현장이 된 곳이기도 하다.

 

성곽의 둘레는 1.8km, 성벽의 높이는 5m의  평지성이다.

정문은 鎭南門(진남문)이고 동문과 서문이 있으며 북쪽엔 암문이 있다.

일제강점기에 읍성 철거령에 따라 성안의 관아 시설물이 모두 철거되고 성안에 민가가 들어오면서 읍성의 옛모습은 모두 사라져버렸었다.

1963년 1월 21일 사적 제116호로 지정하고 1970년부터 성 안팎의 민가 철거 및 복원공사를 시작하여 1974년 동문과 서문을 복원하고 그 후 동헌, 객사, 내아 등을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하였다.

 


◆ 탐방일자 : 2022. 10. 22 (토)

 

↑동문쪽 넓은 주차장에 주차하고 왼쪽으로 돌아와 진남문으로 들어간다.

 

 

 

↑鎭南門(진남문)

읍성의 남쪽으로 통하는 성의 정문이다.

 

 

↑성벽으로 올라가 한바퀴 돌아보려 했는데 안전사고 예방과 성곽보호를 위해 보행을 제한한다는 표지가 있어 포기한다.

성곽은 보이는 것처럼 외벽은 석성이고 내벽은 토성으로 되었다.

 

↑진남문 위의 모습이다.

낙안읍성이나 고창읍성과는 다르게 옹성이 없다.

 

 

↑진남문에서 동헌으로 가는 길이다.

왼쪽으로 전통주막 건물 옆으로 넓은 잔디밭에서는 수석전, 분재전, 사진전 등이 열리고 있다.

매년 10월이면 이곳에서 여러 문화축제가 열린다지...

 

 

 

회화나무

충청남도 기념물 제172호로 지정된 수령 약 300년으로 추정되는 나무다.

나무 뒤에 보이는 건물은 옥사인데 특별히 천주교 신자들을 많이 가두었던 감옥이다.

1790~1880년 사이 이곳 옥사에 수감된 천주교 신자들을 이 나무의 동쪽으로 뻗어 있던 가지에 철사줄로 머리채를 매달아 고문하였다고 한다.  이곳에서 처형된 신자들의 수가 무려 1,000여명이 넘는다고 한다.  1866년(고종3) 병인박해 때는 얼마나 더 심했을까?

동쪽 가지는 1940년대에, 가운데 줄기는 1969년 6월 26일에 폭풍으로 부러져버렸다고 한다.

 

 

↑동쪽 가지가 부러진 곳의 상처는 수간 깊이 부패되어 치료를 위한 외과수술 등 보호관리 흔적이 보인다.

 

 옥사(獄舍)

해미읍성의 옥사는 다른 읍성에 있던 옥사와는 다르게 천주교도들과 깊은 연관이 있다.

터만 남아있던 곳에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발굴 작업 뒤 복원한 건물이다.

1935년 간행된 「해미 순교자 약사(海美殉敎者略史)」의 기록을 토대로 복원되었다고 한다.

 

 


 

 

민속가옥(民俗家屋)

실제 읍성내에 거주하던 민가였는지는 알 수 없으나 모두 재현된 민가들이다.

말단관리 서리, 상인,  부농의 집 등

 

 

 

 

↑동문(잠양루)

 

▼성밖에서 바라본 모습

↑岑陽樓(잠양루)

 

 

 


 

▼ 東軒(동헌)

 

湖西左營(호서좌영)

동헌의 출입문이다.

 湖西左營이란 현판을 붙인 것은 충청도 5군영의 하나로  호서지방의 행정중심 역할을 하는 관아라는 뜻이다.

 

東軒(동헌)

지방행정과 송사(訟事)를 처리하던 곳

 

 

↑동헌에서 내아로 통하는 문

 

↑내아(內衙)

관리와 가족들의 안채 즉 살림집

 

↑내아 모습

 


 

↑청허정으로 가는 108계단

 

 

↑淸虛亭(청허정)

1491년(성종22)에 충청도병마절도사로 부임한 조숙기(1434~1509)가 지은 정자이다.

청허는 마음을 맑게하고(淸) 마음을 비운다(虛)는 뜻으로 맑고 욕심없이 다스리라는 의미를 담고 있단다.

 

↑청허정에서 정문쪽을 바라본 모습이다.

그 옛날 저 나무가 앞을 가리지 않고 맑은 날에 바다가 보였을까?

멀리 보이는 바다풍경을 보고 시를 읊었다고 하니...

 

청허정은 해미읍성의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다.

서쪽엔 소나무숲이 있고 동쪽엔 대나무숲이 있다.

 

 

이곳 청허정을 찾은 관리들이나 문객들이 멀리 가야산과 하얀 구름을 바라보며 풍류를 즐겼을까?

 

 

↑대나무숲과 청허정

 

↑북쪽성벽과 해자

 

↑북문 위에서 바라본 해미면

 

 

↑북문(암문暗門)

※ 암문이란 성벽에 누각이 없는 문을 말한다.

문이 닫혀있고 성벽이 높으니 넘어갈 수도 없어 서문으로 나가 살펴본다.

 

 

↑북문 밖의 모습

 

↑해자(垓字)와 성벽

해자(垓字)란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성 주위를 둘러서 판 못을 말하는데 발굴조사를 통해 북쪽 일부만 복원한 것이다.

 

 

↑국궁체험장

 

 

↑서문(지성루)

 

 

↑枳城樓(지성루)

적이 쉽게 접근하지 못하도록 성주변에 탱자나무를 심어 「탱자성」이라는 뜻의 「지성(枳城)」이다.

※ 枳 : 탱자나무 지

 

↑서문 밖 서산고등학교

 

 

성벽 위에 올라오니 마치 선선한 바람이 불어온다.

백호기, 현무기 등 오방기가 펄럭이는 모습에 내가 마치 병영의 단상에 올라 선 느낌이다.

 

 

 

↑서문에서 성안을 바라 본 모습

관아는 왼쪽에 복원되어 있고 민가가 있었다면 우측에 있었을 듯...

 

 

↑객사와 보기드문 노송

 

객사(客舍) 

객사는 건물 중앙의 정청(政廳)과 좌우 숙소로 나눈다.

이곳 해미읍성의 객사도 중앙 정청 마루에 전패(殿牌)를 모시고 관아의 대소 관원들이 왕을 상징하는 전패에 절하는 의식을 행하는 곳이었고  좌우측의 방은 조정에서 파견된 관원들의 숙소로 사용되었다.

※ 객사 건물 뒤에는 내아가 자리하고 있다.

 

 

↑관아 건물들이 있는 곳의 전경

객사 뒤로 내아, 동헌, 그리고 청허정이 숲속에 묻혀있다.

 

 

↑사진전 작품 중에 일출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 가져왔다.

 

 

↑성곽을 대강 둘러볼 때 치성(雉城)이 없었는데  남문 서쪽 가까이에  치성의 형태와 누각을 세운 두곳의 이런 모습이 있다.

 

 

↑성안을 향해 남문 왼쪽 성벽위에서 바라본  전통주막과 찻집, 기념품판매소 등 초가집 모습

 

 

 

↑↓분재전시장과 수석전시장을 지나며..

 


성문 밖으로 나와서...


 

정문 좌우측에 있다는 각자석(刻字石)을 찾아 보았다.

성 외벽의 성돌에 고을명이 세겨져 있는 것으로 성벽을 고을별로 나누어 쌓으면서 책임구간에 대한 증거라고 한다.

진남문은  아치 모양의 홍예문으로 해미읍성의 세 관아문 중 유일하게 본래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다고 하니 읍성 복원시 이곳에 모아놓은 건 아닐 것이다..

 

↑밖에서 성문을 바라보고 우측 성벽에 있는 각자석

李자가 보이고 그 왼쪽으로 글자가 있으나 알 수 없다. 그 아랫성돌에는 晉자 같은 글자가 세겨져 있다.

 

↓아래로 좀 내려다 살펴보면 公州(공주)라는 글자가 선명하게 보인다.

 

↑밖에서 성문을 바라보고 좌측 성벽에 있는 각자석이다.

州淸라는 글자가 보인다. 청주(淸州)를 뜻한다.

 

 

 

 

 

 

↑동문 : 岑陽樓(잠양루)

 

↑토요일이어서 1,2,3주차장 모두 만차에 가깝다.

성내에 전시회 등이 있으니 오후쯤엔 더 많은 인파가 예상된다.

 

해미읍성은 다른 읍성과 달리 충청도병마절도사영으로 충청지역의 군사 중심지였고 잠시나마 이순신 장군도 머물렀던 곳이다. 병인박해 때는 많은 천주교도들이 처형당한 순교 성지이기도 하며  2014년 8월15일엔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문했던 곳이기도 하다.  누구나 한번 쯤은 역사체험과 관광삼아 다녀가 볼만한 곳이라 생각한다. 

짧은 시간 많이 걷고 또 배우고 간다.

 

 

 

 

▼ 낙안읍성과 고창읍성으로 가보기

 

 

 

순천낙안읍성

오전에 조계산 산행을 마치고 선암사에서 낙안읍성으로 이동한다. 낙안읍성으로 가는 길은 상사호 옆을 지나고 또 오공재를 넘는 조정래길을 이용한다. 오공재(오공치)는 낙안면과 승주읍을 넘

seonghwan7047.tistory.com

 

 

 

고창읍성(高敞邑城)

이틀전 낙안읍성에 갔었다. 낙안읍성,서산해미읍성, 고창읍성을 대한민국 3대 읍성이라 한다기에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고창읍성을 찾았고. 머지않아 해미읍성을 가 보려고 한다. ■ 탐방일자 :

seonghwan7047.tistor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