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행일자 : 2018. 5. 24 (목)
● 이동구간 : 군산내항 - 새만금방조제 - 변산해수욕장 - 적벽강 - 수성당 - 격포해변 - 채석강 - 닭이봉 - 격포항 - 봉화봉
↑2018. 5. 9 (수) 군산역사박물관에서 군산내항을 바라본 모습 / 강건너편은 충남 서천 장항
군산항(群山港)
군산항(群山港)
1. 군산의 옛날 지명은 진포(鎭浦)였다.
진포가 군산으로 지명이 변경된 것은 세종때 군산도(현 선유도)에 있던 수군부대 군산진을 진포(현 군산내항)로 이전하며 진포를 군산이라 칭하고 군산도(선유도)는 고군산도라 칭하게 되면서 부터이다.
2. 군산항이라고 하면 군산시 소룡동에 있는 군산항을 떠올린다.
그 곳에 여객터미널과 부두가 모두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군산항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일제가 운양호사건을 빌미로 1876년 강화도조약을 체결하고 청일전쟁이후 부산, 원산, 인천, 목포, 진남포, 마산 등을 개항하고 1899년 5월 1일 강제로 개항된 곳이 군산항이며 지금의 군산세관이 있는 장미동 일대 금강하구의 어촌마을 포구였다. 이곳이 군산항이었고 지금은 군산내항이라 부른다.
3. 일제가 군산항을 강제로 개항한 것은 호남과 충청의 토지를 강탈하고 그곳에서 생산된 식량을 수탈해 갈 목적이었다.
군산을 급격히 항구도시로 성장시킨 배경은 호남, 충청의 농토를 빼앗아 일본의 것으로 만들어 가난한 일본 농민을 옮겨와 살게 하고, 역시 호남, 충청의 쌀을 일본으로 강제 수출시켜 일본의 쌀 부족을 보충하고자 함이었다. 따라서 전북 지역은 가장 많은 일본인 농장이 모여 있던 지역이 되었고 가장 높은 사회 지배세력을 형성할 수 있었던 일본 식민정책의 중심이 되었다. 군산지방은 쌀 수출항구로서의 위치 때문에 특히 농장이 많이 모여 있었다.
※ 수출이라기 보다는 수탈이었다.
4. 쌀 수탈의 전진 기지가 된 군산항
일제의 식민정책은 한국을 식량 및 원료생산지로 또 일본 공업제품의 판매시장으로 만들고자 산미증산계획에 역점을 두었다. 정미소도 10여개가 밤낮 없이 가동되었다. 일본인 지주들의 가혹한 소작료 강제 징수로 빼앗긴 곡물은 모두 군산으로 집결되어 군산부두에는 쌀의 산이 만들어졌다. 이를 일본으로 가져가기 위하여 1926년부터 1933년까지 부두에는 뜬다리가 6기가 설치되었고 1933년 군산항에서 일본으로 쌀을 수출하는 양이 200만석을 넘지 못하였는데 개항 35주년이 되는 1934년에는 기어이 200만석을 넘어서게 되었다.
해방 이후에는 점차 무역항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하고 실질적인 무역항의 기능은 신항(군산외항)으로 옮겨진다.
5. 군산 소룡동의 군산외항은 1979년에 제1부두가 준공되며 개항되었다. 1990년대부터 서해안 시대에 대비하고 군산·장항국가산업단지 지원과 중부권 화물운송의 거점 항만으로 육성하기 위한 군장신항만개발계획이 수립되었다. 이 계획에 의거하여 1995년 7월부터 2004년 5월까지 제 3, 4, 5, 6부두가 모두 준공되었다.
↑군산항 뜬다리(부잔교:浮棧橋)
군산항 부잔교(浮棧橋)는 조수간만의 차가 큰 서해안의 특징을 살려 밀물과 설물시 상하로 움직이도록 설계된 선착장 시설물이다.
일제가 3천톤급 기선(汽船) 3척이 동시에 접안 가능하도록 3기를 설치하고 이후 3기를 추가 설치하여 6기가 사용되었으나 현재는 3기만 남아 있다.
↑진포해양테마공원(鎭浦海洋Theme公園)
고려말(1380년) 왜구가 백성들에게 거두어들인 세곡을 약탈할 목적으로 진포에 침입하였을 때 최무선 장군이 화포를 이용하여 왜구를 물리친 진포대첩(鎭浦大捷)을 기념하기 위해 조성된 공원으로 육해공군의 퇴역군장비 등이 전시되어 있다.
군산외항으로 이동 →→
↑군산외항으로 이동하면서 군산쪽에서 장항쪽을 바라본 모습
↑군산항 국제여객터미널과 연안여객터미널
↑군산항 3부두
새만금방조제
새만금방조제위를 달리고 있다.
새만금 방조제는 1991년 착공하여 2010년 준공된 방조제로 군산과 야미도, 신시도, 가력도, 부안을 연결하는 33.9km의 방조제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방조제이며 2010년 준공 당시 세계에서 가장 긴 방조제로 인증되어 기네스 기록에 올랐던 방조제이다.
새만금 신시광장↓
↑새만금방조제 건립기념탑
↑새만금방조제건립탑에서 바라본 야미도
↑전북 김제 방향을 바라보고 있다.
↑가력도항
변산반도
↑변산팔각정 : 낡은 팔각정을 걷어내고 새로 세우고 있다.
↑팔각정에서 바라본 고군산군도 방향
↑변산팔각정에서 멀리 하섬을 바라보고 있다.
변산해수욕장(邊山海水浴場)↓
변산해수욕장(邊山海水浴場)
부안군 변산면 대항리에 있다.
1988년 변산반도국립공원에 포함 지정되어 백사청송(白沙靑松)을 자랑하는 서해안 3대 해수욕장의 하나로 명성이 높았던 해수욕장이었다.
그러나 국립공원으로 관리되면서 주변개발이 제한되어 숙박시설과 위락시설 등이 낙후된 실정에다 새만금방조제 가 건설되면서 해수욕장 바닥에 세굴(洗掘)현상과 백사장 모래유실 등으로 해마다 해수욕장을 찾는 관광객수가 줄어들었다고 한다.
이러한 가운데 변산해수욕장은 2003년 국립공원 보호구역에서 해제되었고 2008년 도관광지로 지정하면서 변산면 대항리 일대에 호텔과 펜션단지, 오토캠핑장, 해양레저시설 등 관광단지 조성사업을 현재(2018. 5) 진행중에 있다.
고사포해수욕장(故沙浦水浴場)↓
↑앞에 보이는 섬이 하섬이다.
원불교 소유라고 한다. 하섬의 이름에 쓰이는 한자도 원불교와 연관이 있다.
새우 모양같아서 새우 뜻을 담은 하섬(鰕島)이 원불교 소유로 바뀌면서 연꽃의 의미를 담은 하섬(荷島)으로 쓰기도 한다.
해수욕장 뒷편에는 원광대학교 수련원이 있다.
↑원광대 임해수련원
↓하섬(蝦島, 鰕島, 荷島)
↑약 3만평 규모의 작은 섬이다.
새우가 웅크리고 있는 모양같다하여 새우하(鰕) 자를 써서 하섬이라고 하는데 바다에 떠있는 연꽃같다하여 연꽃을 의미하는 하섬(荷島)으로 쓰기도 한다.
음력 초하루와 보름 무렵 썰물 때가 되면 바닷길이 열린다.
변산해안로를 달린다.↓↓
↓성천항으로 들어가는 길을 놓쳐 되돌아가지 못하고 어디쯤인지 노견에 차를 세우고 해안으로 내려가 본다
↑먼곳의 섬들은 고군산군도이며 우측에 하섬이 있다.
↓「작은당 사구식물 관찰지」라는 팻말이 있어 내려와 봤다.
↑우측의 돌출된 지형이 적벽강인듯 보인다. 해변 좌측이 사구(沙丘)지역이다.
↓적벽강(赤壁江)
당(唐)의 시인 소동파(蘇東坡)가 즐겨 놀았다는 중국의 적벽강(赤壁江)을 닮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채석강(彩石江)과 더불어 명승 제13호로 지정(2004.11.17)되어 있다.
↑적벽강의 몽돌해변
적벽강 일대는 화강암(花崗岩)과 편마암(片麻岩)을 기반암으로 하고 주변의 암석은 유문암(流紋 岩)이나 유문암질 응회암(凝灰 岩) 등 다양한 암석들로 구성되어 있다.
바닷물과 햇빛, 암벽과 바윗돌들이 영롱하게 어우러져 신비한 색채의 조화가 절경을 이루고 있다.
↑절벽의 암석과 자갈돌들이 적갈색을 띠고 있다.
수성당(水聖堂)↓
딸 여덟자매를 낳아 일곱딸을 팔도에 나누어 시집보내고 막내딸만 데리고 살면서 서해를 다스렸다는 개양할머니의 전설이 깃든 이곳이 「수성당」이다.
매년 정월 열나흘에 죽막동을 중심으로 어민들의 무사태평과 풍어를 비는 수성당제를 지낸다고 한다.
※ 죽막동은 수성당이 있는 안쪽마을을 가리킨다. 죽막골이라고 한다.
적벽강 몽돌해변에 까지 울려 퍼지던 축원문을 외우며 두들기던 장고소리는 왼쪽의 제를 올리는 곳이었다. 우측의 건물이 수성당이다.
↑수성당에서 서해를 바라 본다. 멀리 보이는 섬이 위도(蝟島)이다.
↑격포해변과 대명리조트
↑수성당에서 바라본 남쪽의 닭이봉과 봉화봉
격포해수욕장(格浦海水浴場)↓
↑우측의 봉우리는 「닭이봉」, 닭이봉 해안 절벽으로 이어지는 곳이 채석강이다.
↑역광으로 보이지 않으나 「해넘이채화대」라고 세겨져있다.
↑격포해변에서 바라본 수성당이 있는 용두산(돌출부분)
채석강(彩石江)↓
닭이봉 일대의 해안 1.5km의 층암절벽과 바다를 총칭하여 채석강이라 하는데 당나라 시인 이태백이 놀았던 중국의 채석강(彩石江)과 견줄만큼 아름답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적벽강과 더불어 명승 제13호로 지정(2004.11.17)되어 있다.
오랜 세월 바닷물이 만들어 낸 걸작품인 퇴적암층
수천만권의 책들을 차곡차곡 포개 놓은 듯한 퇴적암층(堆積岩層)의 단애(斷崖)
닭이봉↓
닭이봉에서 내려다 본 모습↓↓
↑왼쪽 돌출 지형은 수성당이 있는 용두산, 격포해변과 대명리조트
↑서쪽바다 멀리 위도(蝟島)
↑격포항(格浦港), 건너편 봉우리는 봉화봉이고 좌측으로 비슷한 높이의 산이 사투봉이다.
닭이봉이란 지명이 특이하다.
격포마을의 지형이 지네형국이어서 마을에 재앙이 많았다고 한다. 그래서 지네와 상극인 닭의 이름을 넣어 닭이봉이라 했다면 이해가 갈텐데 그것도 아니고 다만 족제비상을 만들어 사투봉에 세워 닭의 이름을 가진 닭이봉인 이곳을 바라보게 하니 마을에 재앙이 없어졌다는 전설인데 닭이봉의 지명 유래도 아니고 왜 족제비가 등장하는지 알수가 없다.
지네와 닭은 서로 상극임에 틀림없다. 『닭이 지네를 보고 달려드는 걸 보았다. 달려드는 기세는 상상을 초월한다.』 지네를 채집하려면 삶은 닭을 단지에 넣어 지네서식지에 두면 지네들이 모여든다고 한다.
봉화봉(烽火峰)↓
↑봉화봉을 오르는 들머리
↑봉화봉 정상에 있는 월고리봉화대(月古里 烽燧臺) / 봉화봉 174.2m
↓↓높이 자란 나무들로 사계관측이 어렵다.
↑희미하지만 멀리 위도가 보인다.
↑하산하면서 내려다 본 격포항
봉화봉을 둘러싼 해안을 돌아보자!
↑지질은 채석강과 크게 다를 바 없다.
↑격포항(格浦港)
↑격포항 요트마리나
↑해식동굴
↑현재시간 16시 28분 위도에서 15시 35분에 출항한 대원카페리호가 격포항으로 들어오고 있다.
다음주 화요일 위도에 들어갈 예정이다.
● 안내지도
↑격포항(格浦港)
' 해안도로 따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전남] 영광 해안도로 여행 : 백제불교최초도래지 ~ 백수해안도로 (0) | 2019.03.03 |
---|---|
[부안]위도 망월봉 산행과 해안도로 일주 (0) | 2018.06.01 |
[보령/서천]해안도로여행 : 무창포에서 금강하구까지 (0) | 2018.05.12 |
[충남 홍성/보령]해안도로여행 : 남당항에서 무창포까지 (0) | 2018.03.25 |
서산 AB지구방조제와 간월도 (0) | 2017.11.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