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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승지와 유적지를 찾아

남해여행 : 이충무공 전몰유허지-가천다랭이마을- 보리암

by 성 환 2019. 3. 19.

 

 

 

 

보물섬 남해(南海)

남해에서도 가장 으뜸이라고 할 수 있는 금산의 보리암을 찾아보기 위해 동트기전 06:00시에 충남 천안에서 출발하여 남해대교 아래에 도착한 시간은 10:00시 쯤이다.

남해에서 가봐야 할 곳은 많지만 일정은 단 하루 뿐이라서 아래와 같이 3곳을 선정 하였다.

1. 노량해전을 마지막으로 전사한 이충무공전몰유허지

2. 가천다랭이마을

3. 금산 보리암

 

● 일자 : 2019. 3. 16 (토)

 


 

 ▶ 첫코스

   남해대교 - 남해충렬사 - 이충무공전몰유허지

 

지난해 9월에 개통된 노량대교를 건너와 대교 밑으로 향하며 바라본 모습이다.

 

↑노량대교(露梁大橋)

바다 건너편은 하동이다.

하얀증기를 뿜어 올리고 있는 곳은 무엇하는 곳일까?  굴뚝 옆으로 원통형 탱크나 싸이로같기도 한데 하동의 대송산업단지인가?

 

↑우측의 다리는 남해대교(南海大橋)

 

건너편은 하동군 금남면 노량리이고 이쪽은 남해군 설천면 노량리이다.

 

노량해전의 격전지가 바로 이곳이다.

노량해전이라고 하면 임진왜란 중 이순신장군이 전사한 해전이며 승리로 이끈 마지막 싸움이다.

임진왜란은 1592년부터 1598년까지의 7년 전쟁이다.

왜군은 1597년 9월 명량해전에서 크게 패배하고 퇴각하기 위해 조명연합군(朝明聯合軍)과 휴전협정을 하던 중 일본의 요구조건이 받아들여지지않아 협정은 결렬되고 재차 일으킨 전쟁이 정유재란이다.

정유재란때인 1598년 11. 18 ~ 19일 이틀동안 이순신장군은 이곳 노량해협에서 왜군을 크게 무찌르고 퇴각하던 왜군을 뒤쫓다 관음포 해역에서 왜군의 흉탄에 맞아 전사한다.  

이 때 이순신장군은 총탄에 맞아 쓰러지면서 “싸움이 급하니 내가 죽었다는 말을 하지 말라(戰方急愼勿言我死)”는 세계사상 길이 빛나는 유언을 남기고 숨을 거두었다.

 

 

↑거북선전시관

 

 

 

남해충렬사↓↓

 

 

남해충렬사(南海忠烈祠) : 사적 제 233호

충무공 이순신(李舜臣, 1545~1598)장군을 모신 사당이다.

 

 

 

 

 

↑충무공 이순신장군 가묘(假墓)

현재 묘소는 충남 아산시 음봉면 삼거리 산2-1에 있다.

 

 

관음포(觀音浦)↓↓

 

 

 

이곳 관음포 해역은 임진왜란의 마지막 격전지로 충무공 이순신장군이 순국하신 곳이다.

이 앞바다에서 도망하는 왜군을 뒤쫒다 적의 유탄에 맞아 1598년(선조31) 음 11월19일 이른 아침에 최후를 맞았다. 

 

 

 

↑觀音樓(관음루)

 

↑露梁大院 (노량대원)

 

↑全勝館(전승관)

 

 

 

이충무공 전몰유허지↓↓

이곳을 이충무공 유허지로 정한 것은 관음포에서 전사한 충무공의 유해가 맨 처음 뭍으로 올려졌던 곳이며 관음포가 바라보이는 곳이기 때문이다.

 

 

李落祠(이락사)

이충무공의 유해를 처음 모셨던 사당

 

↑大星隕海(대성운해)

「큰별이 바다에 떨어지다.」

 

이락사를 우회하여 첨망대로 가는 길

 

 

瞻望臺(첨망대)↓↓

이충무공이 순국하신 관음포 앞바다를 바라볼 수 있는 곳이다.

 

 

첨망대 내에는 사방으로 편액을 달아 놓았다.  누군가 우리말로 해설까지 붙여두었는데 모두 생략한다.

 

첨망대에서 바라본 관음포 앞바다.

                                                                                             

 

● 안내지도

 

 

 


 

 

 

 

▶ 두번째코스

   가천(加川)다랭이마을

 

 

 

 

 

 

 

 

다랭이마을은 남해군 남면 홍현리에 있다.

이 마을은 바닷가에 바다를 끼고 있으면서 지형상 방파제도 필요 없고 배 한척 없는 마을이다.

해안절벽을 끼고 비탈진 땅을 터전삼아 살아야 했던 마을 주민들의 눈물과 땀이 투영된 곳.

다랭이가 말해준다.

 

↑남해가천암수바위

마을로 내려가는 중간에 있다.

암수바위를 미륵불이라 칭하며 자식없는 사람이 공을드리면 득남한다는 설이 있단다.

숫바위는 한눈에 들어오는데 암바위는 알 수 없다.

암바위는 임신하여 만삭이 된 여성이 비스듬히 누워있는 모습이라고 하는데 누워있는 바위가 여럿이라 ..... 일부다처?

 

 

 

↑허브를 가꾸는 논배미도 있다.

로즈마리(Rosemary)가 보라색 꽃을 피우며 향기를 내뿜는다.

로즈마리 향기는 두통을 가라앉히고 기억력과 집중력을 높인다고 한다.

 

 

 

 

 

 

 

 

 

 

 

 

 

 

 

다랭이마을 뒷산(설흘산 482m) : 올라가 사방을 바라보면 얼마나 좋을까 !

 

↑가천마을 밥무덤

마을 중간에 있다.

마을을 지켜주고 풍요를 점지해 주는 땅의신, 즉 지모신에게 밥을 올려 그 기운이 땅속에 스며들어 풍요를 되돌려 받고자하는 간절한 염원이 담긴 마을의 신앙이다.

 

 

 

 

 

 

 

● 안내지도

 

 

 ♣   다랭이마을을 뒤로하고 보리암으로 이동 중  ♣

 

↑해안도로를 따라 가며 두곡해수욕장 근처를 지날 때 해안의 모래와 바위들이 너무 아름답게 보여 잠시 차를 세웠다.

저 앞에 보이는 산이 다랭이마을 뒷산같다. 

 

 

↓미국마을 앞을 지나고 있다.

 


 

 

마지막 코스    금산 보리암

 

가천다랭이마을을 빠져나올 때 시간은 오후 1시 반이었다.

 

점심시간을 걸러가며 보리암 복곡주차장입구에 이르자 차량은 꼬리를 길게 물고 늘어져 주차장 매표소를 통과하는데도 많은 시간을 보내야 했다.

토요일 오후라서 많은 관람객이 몰려든 탓인지 주차장은 거의 만차다.

3주차장에 주차 하고 셔틀버스를 타고 보리암 매표소에 이른 시간은 2시 40분이었다.

 

 

제1주차장에 주차공간이 없어 여기까지 올라와 주차하고 이곳에서 셔틀버스 승차

 

↑보리암매표소

 

↑매표소에서 보리암까지 15분 정도 걸어가야 한다.

 

 

 

 

 

 

 

 

 

보리암(菩提庵)

남해군 상주면 금산에 있는 절이다.

하동군 화개면에 있는 대한불교조계종13교구 총림 본사인 쌍계사(雙溪寺)의 말사이다.

신라 신문왕3(683) 원효(元曉)가 이곳에 초당을 짓고 수도하였고 산의 이름을 보광산(普光山), 초암의 이름을 보광사(普光寺)라 했었다.

그 후 이성계가 이곳에서 백일기도를 한 후 조선왕조를 열었다는 기록이 전하며 이때부터 금산이라 하였다고 한다.

1660(현종1)에 이 절을 왕실의 원당(願堂)으로 삼아 보리암(菩提庵)으로 했단다.

 

 

 

 

 

 

 

 

 

 

 

 

 

 

 

↑해수관음보살상(海水觀音菩薩像)

 

 

 

 

 

보리암 삼층석탑(菩提庵三層石塔)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 74호

  전설에 의하면 이 석탑은 김수로왕비 허태후가 인도 월지국에서 가져온 불사리를 원효대사가 이곳에 모셔 세웠다고 전하고 있지만 화강암으로 건조한 고려 초기의 양식이라고 한다.

 

 

 

禮聖堂(예성당)

 

極樂殿(극락전)

 

↑이성계가 백일기도를 하고 조선왕조를 열었다는 저곳, 보일듯 말듯 가보고 싶으나 다른 갈길이 멀다.

 

禮聖堂(예성당) : 극락전에서 바라본 모습

 

極樂殿(극락전) 내부 모습

이제 금산(錦山) 정상을 향하여~~

 

 

 

 

남해금산(南海錦山) 705m

섬 가운데 우뚝 솟은 산

원래 산의 이름은 신라 신문왕3(683) 원효(元曉)가 이곳에 초당을 짓고 수도하며 산의 이름을 보광산(普光山)이라 했었다.

그 후 이성계가 이곳에서 백일기도를 한 후 조선왕조를 열어 그뜻이 이루어짐에 따라 온산을 비단으로 감싸주겠다는 생각을 했었기에 이 때부터 산의 이름을 금산(錦山)으로 명명했다고 전해온다.

 

망대(望臺)와 봉수대(烽燧臺)

금산 정상에 위치한 이곳은 금산 제1경으로 사방의 조망이 트여 한려해상국립공원인 남해바다를 바라볼 수 있는 곳이라 하여 망대(望臺)라 했으며 고려말기에서 조선초기까지 왜적의 침입을 알리는 통신수단인 봉수대(烽燧臺)로 사용했던 곳이다.

 

 

 

 

 

흔들바위

거북이 모양을 닮아서 귀암(龜岩)이라고 하였는데 이처럼 큰 바위가 한사람의 힘으로도 흔들거리기 때문에 요암(搖岩)이라 한단다.

 

 

 

↑금산산장

이곳이 1박2일에도 나왔다는 곳. 그래서 특별히 이곳까지 찾아와 늦어도 한참 늦은 점심을 컵라면으로 대신한다.

시장이 반찬이라고 했던가?  

 

↑제석봉(帝釋峰)

저 바위에서 부처를 좌우에서 모시며 불법을 지키는 제석천(帝釋天)이 내려와 놀고갔다하여 제석봉(帝釋峰)이라 이름을 붙였다는데 올라가 봐야지....

 

제석봉에서 보리암을 바라본 모습↓

 

 

화엄봉(華嚴峰)

 

화엄봉 곁에서 보리암과 해수관음상 그리고 남해바다를 배경으로 추억을 담으며 하산을 서두른다.

 

●안내지도

 

 

 

  노량대교와 남해대교의 야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