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울진〕 망양정과 망양정 옛터
● 여 행 일 자 2016. 05. 12 (목)
● 망양정(望洋亭) 개관(槪觀)
• 경상북도 울진군 근남면 산포리 716-2 에 있는 조선시대 정자로 관동팔경의 하나
• 왕피천(王避川)이 흐르는 망양해수욕장 남쪽의 바닷가 언덕 위에 자리잡고 있어 동해를 한눈에 굽어볼 수 있다
조선 숙종이 ‘관동제일루(關東第一樓)'라는 현판을 하사 할 만큼 정자에서 바라보는 경치가 한폭의 그림처럼 아름답다.
망양정 서쪽으로는 관광명소인 성류굴(천연기념물 제155호)이 있고 왕피천을 따라 올라가면 멀지 않은 곳에 불영사계곡이 있다.
▷ 변천사(變遷史) * 여러 자료를 토대로 정리하였음
• 처음에는 기성면 망양리 해안에 세워졌으나 1471년(성종 2)에 평해군수 채신보가 현종산 기슭에 옮겨놓았다.
• 1517년(중종 12)에는 비바람으로 정자가 파손되자, 다음해 중수하였다.
• 1590년(선조 23)에 평해군수 고경조(高敬祖)가 중수하였으며
• 1690년(숙종 16) 숙종이 안원군(眼原君)에 편액(偏額)을 보내어 게판(揭板)하였다.
• 1854년(철종 5) 울진현령 신재원(申在元)과 군승(郡承) 남치붕(南致鵬)이 망양정을 이축(移築)할 것을 계획하였으나 추진하지 못하다가
• 1860년(철종 11) 울진현령 이희호(李熙虎)가 군승(郡承) 임학영(林鶴英)과 함께 기성면 망양리 현종산 기슭에서
근남면 산포리 둔산동 현재의 자리로 이전하였다.
• 그 후 망양정이 오래되어 퇴폐된 것을 1957년에 보수에 착수하여 1958년에 낙성되었다
• 1979년과 1995년에 부분교체하는 등 보수 정화하였고 이후 경북 북부권 문화관광개발사업의 일환으로 2005년 완전 해체하고 새로 지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 안내지도
↑망양정 아래 바다로 흘러드는 왕피천 하구
※ 왕피천(王避川)이란 의미는 임금이 피난을 한 곳이라 거나 임금이 피서를 위해 머문 곳이라는 설이 있으나 관동팔경과 결부시켜 볼 때
후자일 것으로 본다.
망양정(望洋亭)↑
정면3칸 측면 2칸의 다포양식 건물↗
1860년 현재의 자리로 이전해 오기전 기성면 현종산 기슭의 옛터에 있을 때 주춧돌↑
망양정(望洋亭) 편액(扁額)들↓↓↓
↓ 정철의 관동별곡
↓망양정 약사(略史)
↓ 채수의 망양정기
↓숙종대왕어제
↓ 정조대왕어제
↑↑ 망양정에서 바라본 모습 / 왕피천하구의 모래톱과 위로 울진해수욕장
동해바다↑
현종산 기슭의 망양정 옛터↓
근남면 산포리에서 남쪽으로 13km 정도 떨어진 기성면 망양리에 있다.
望洋亭遺墟碑(망양정유허비)↑
이곳에 정자가 세워지기 전까지 1993년 12월에 세워진 이 비석이 옛터를 지키고 있었다.
망양정 옛터(望洋亭舊址/망양정구지)에 지어진 정자↑
경북 울진군 기성면 망양리 413-4
망양정이 해안가에 처음 세워졌다가 허물어져 이곳으로 옮겨온 장소이다.
첫머리 변천사에서 처럼 조선시대 1471년(성종2)에 평해군수 채신보가 현종산(縣鍾山) 기슭인 이곳으로 옮겨 세웠다.
해안으로 자동차 도로가 만들어지기 전의 주변 모습을 떠올려 보면 좋을 것 같다.
이 곳에서 근남면 산포리 둔산(屯山)으로 옮겨진 이유는 “후세 사람들의 안목이 고루하다하여 읍치(邑治)에서 조금 멀기 때문에 강과 바다가 있는 곳으로 옮겨 지었다”고 한다.
옛터인 이곳의 정자는 2015년에 건립하였으며 지역 주민과 탐방객들에게 쉼터는 물론 선인들의 정취를 느낄 수 있도록 해 주고 있다.
망양정해맞이공원은 망양정과 인접해 있다.
울진대종↑
공원에서 내려다 본 망양해수욕장↑
공원남쪽 언덕 아래 집은 인적없는 빈집으로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