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알프스 (5, 6) 재약산 , 천황산 / 표충사
● 일 자 : 2021. 10. 7
● 산 행 코 스 : 표충사 - 층층폭포 - 사자평억새밭 - 재약산 - 천황재 - 천황산 - 금강폭포 - 주차장
예상거리 및 시간 : 11km / 5시간 30분
↑載岳山表忠寺(재악산표충사)
뒷산이 재약산(載藥山)인데 왜 재악산이라 했을까...
이젠 天皇山表忠寺(천황산표충사)라고 하는 것 같다.
표충사(表忠寺)
표충사는 밀양시 단장면 구천리에 있다.
654년(무열왕1)에 원효대사가 산정에 올라 남쪽 계곡 대나무 숲에서 오색구름이 일고 있는 것을 보고 이곳에 터를 잡아 절을 세우고 죽림사(竹林寺)라고 했다.
829년(흥덕왕4) 인도의 황면선사(黃面禪師)가 삼층석탑에 석가모니의 진신사리를 봉안하고 절을 충창 했으며 흥덕왕의 셋째 아들이 몹쓸 병을 얻어 전국의 명산과 명의를 찾던 중 이곳의 약수를 먹고 병이 낫게 되자 약수 이름을 영정약수라 했고 이때부터 절 이름을 재약산(載藥山) 영정사(靈井寺)라 했다.
여러 스님들이 이곳에 머물렀다고 하며 특히 일연이 이곳에 머물며 삼국유사를 탈고하였다고 전한다.
임진왜란 때 승병을 일으켜 국난 극복에 앞장선 서산대사, 사명대사, 기허대사를 모신 표충사(表忠祠)가 사명대사의 고향인 밀양시 무안면에 있었는데 1839년(헌종5)에 그 사당을 이곳으로 옮겨오면서 표충서원(表忠書院)이란 편액을 달고 절의 이름은 표충사(表忠寺)로 개명하였다.
이리하여 표충사는 사명대사의 호국 성지로 성역화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1871년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표충서원이 없어졌다가 1883년 지역 유림의 요청으로 복원되었다.
서원은 조선시대의 유교 교육기관이라고 할 수 있다.
해남 대흥사에는 한쪽에 표충사(表忠祠)란 이름으로 구분하여 있고 이곳은 사천왕문을 들어가기 전 아랫쪽에 위치하고 있다. 불교기관인 사찰에 서원이란 이름으로 함께 양립하고 있다는 것이 특이한 현상이다.
표충사는 1974년 12월 경상남도의 기념물 제17호 천황산 표충사(天皇山 表忠寺)로 지정되었다가 2018년 12월 천황사표충사일원으로 문화재 명칭이 변경 되었다.
↑가운데 表忠祠(표충사) 좌측에 表忠書院(표충서원) 우측에 유물관
表忠祠(표충사)
표충사(表忠祠)라고 하면 임진왜란 때 승병을 일으켜 큰 공을 세운 휴정(休靜) 서산대사와 그의 제자 유정(惟政)과 처영(處英)의 영정을 함께 봉안한 곳으로 알고 있었다.
서산대사(1520~1604)는 평남 안주 출신으로 73세 되던 해(1592년 선조25)에 임진왜란이 일어나 묘향산에서 나와 전국 승려들에게 총 궐기할 것을 호소하여 1천500명의 승군을 모집하고 팔도도총섭(八道都摠攝)에 임명되어 활동을 했고 그의 제자 유정도 1천명의 승군을 이끌고 스승 휴정과 합세하여 평양 탈환 작전에 큰 공을 세웠으며 처영도 스승의 격문을 받고 1천명의 승병을 이끌고 봉기해 평양 개성 등지에서 큰 공을 세웠다.
그 외에도 여러 곳에서 많은 전투와 전적을 올렸음은 말할 것도 없다.
그 후 휴정은 제자 유정과 처영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묘향산으로 들어가 1604년 85세 되던 해 정월 묘향산 원적암(圓寂庵)에서 입적하였다.
유정(惟政) 사명대사(1544~1610)는 밀양 무안면 출신으로 밀양에서는 높이 추앙받는 인물이다.
서산대사의 수제자로 금강산 건봉사에서 임진왜란을 맞았고 승병을 규합 전투에 큰 공훈을 세움은 물론 전란중 대일외교 등 눈부신 활약을 했다
사명대사는 1610년 67세 되던 해 8월 해인사에서 입적했다.
이처럼 불교계의 충의를 기리기 위해 국왕이 편액을 내린 사당은 해남 표충사와 묘향산 수충사(酬忠祠) 그리고 밀양 표충사 세 곳이 있다.
밀양 표충사 편액은 영조대왕이 하사했고 해남 표충사와 묘향산 수충사는 정조대왕이 하사했다.
편액을 하사한 시기와 임금이 서로 달라서인지 이곳 밀양의 표충사에서는 처영(處英) 대신에 기허(騎虛)의 영정을 봉안하고 있다는 것을 여기 와서 알게 되었다.
기허(騎虛)는 영규대사(靈圭大師)를 말하는 듯하다. 영규대사는 밀양 박씨로 호가 기허(騎虛)이고 공주 출신이며 임진왜란 때 금산(錦山)싸움에서 공을 세우고 전사한 서산대사의 제자이다.
유정 사명대사의 충훈을 추모하기 위한 이곳 表忠祠 사당 내부에는 중앙에 사명대사의 영정이 있고 동쪽에는 스승인 서산대사, 서쪽에는 기허대사의 영정을 모시고 있다.
↑表忠書院(표충서원)
↑四天王門(사천왕문)
↑삼층석탑(三層石塔) : 보물 제467호
↑梵鐘樓(범종루)
↑大光殿(대광전) :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31호
표충사의 중심 불전(佛殿)으로 석가모니불과 약사불, 아미타불을 모시고 있다.
↑八相殿(팔상전) :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141호
↑觀音殿(관음전)과 우측에 冥府殿(명부전)
冥府殿(명부전) :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143호
명부전은 지장보살(地藏菩薩)을 봉안하고 있기 때문에 지장전(地藏殿)이라고도 하며 유명계(幽明界)의 심판관인 시왕(十王)을 봉안하고 있기 때문에 시왕전(十王殿)이라고도 한다.
초반부터 땀을 너무 흘리고 있다.
머리에서 흘러내리는 땀은 비오듯 쏟아진다.
↓흑룡폭포
↓구룡폭포
↓층층폭포
↑재약산은 곧바로 올라가면 되지만 우측 사자평 습지방향으로 가보기로 한다.
↑재약산 정상인것 같다.
재약산 사자평 고산습지
사자평억새밭 보다 ‘재약산 산들늪’으로 표기된 곳이 더 많은 것 같다.
습지는 약 18만평으로 2006년 12월 28일 환경부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 되었다.
옛날 약 40여가구의 주민들이 이곳에서 생활했던 곳이라고 하며 농경지로 이용했던 지역이 습지로 변한 것이라고 한다..
사자평 억새밭을 지나 수미봉 정상으로 오르는 길은 생각보다 경사가 있다.
또 한차례 더 땀을 쏟아내고 있다.
↑사자평 억새군락지가 내려다 보인다.
↑간월산과 신불산 사이의 간월재도 억새꽃으로 누렇게 보이고 신불산 지나 영축산까지 신불산 억새평원도 억새꽃이 피어서인지 누렇게 비친다.
재약산 수미봉 정상에는 평일인데도 의외로 많은 등산객들로 붐빈다.
난 표충사 쪽에서 어렵게 올라왔는데 20여명이 넘는 이분들은 어디로 벌써 올라왔단 말인가?
↑배내고개 방향
재약산(載藥山 수미봉 1,119m)
↑천황산과 천황재
천황재(天皇岾)
재약산 수미봉과 사자봉 사이에 있는 고개
울주군 상북면 이천리와 밀양시 단장면 구천리를 넘나드는 고개 이름이다.
↑천황산을 오르며 뒤돌아 본다.
천황재와 재약산의 모습
↑까마귀가 기다리고 있구나
천황산(天皇山 사자봉 1,189m))
밀양시와 울산 울주군의 경계에 있는 영남알프스 산군의 일부이다.
남쪽 재약산과 맥을 같이하고 있어 재약산으로 묶어 천황산을 재약산의 사자봉으로 부르기도 한다.
↑얼음골로 가는 방향
영남알프스 9산 중에 아직 오르지 못한 산은 3개 산인데 멀리 운문산과 가지산 너머 문복산 그리고 우측으로 고헌산이 남아 있다.
한계암 방향으로 하산
↑하산하면서 바라본 천황산과 재약산
↑사방으로 둘러 싸인 표충사
↑너덜길이라고 하는 애추(崖錐)를 만났다.
건너면 되는 줄 알았는데 내림길이어서 바위조각을 밟고 걷는 길이 길었다.
↑한계암에서 은류폭포라고 표시해 놓았다.
↑금강폭포위로 한계암이 있다.
↑한계암 가는 계곡은 아주 깊은 협곡이다.
여기에서 표충사까지는 포장된 평탄한 길이다.
하산하고 산을 올려다 보니 천황산은 보이는데 재약산은 가려져 보이지 않는다.
↑표충사 일주문의 풍경(風磬)과 필봉(筆峰)
아침엔 어느 봉우리가 재약산인지 몰랐던 저 산을 우측으로 올라 가운데 천황산 까지 돌아 오는데 12km를 7시간 40분을 썼다.
좀 무리하긴 했지만 무사히 산행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