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시] 최영장군묘, 성령대군묘
● 2019. 4. 21 (일)
누님이 고양시 대자동 대양로 대자교 옆 자그마한 밭에 이런 저런 작물을 취미삼아 경작한다고 하여 그 준비 과정을 돕겠다고 나섰다.
넓지 않은 밭이지만 밭이랑에 퇴비와 비료를 뿌리는 일이며 비닐 멀칭을 하는 일이란 혼자서는 하기 어려운 일이고 인부를 구하는 일도 쉽지않아 화성에 사는 막내가 날자를 잡아 형제들을 호출한 것이다.
천안에 있는 나도 소환되어 왔다.
잠시 시간을 내서 가까운 곳에 최영장균묘와 성령대군묘가 있어 들러 보았다.
최영장군 묘
"황금을 보기를 돌 같이 하라."
이 말은 최영이 16세 때 아버지가 죽으며 아들에게 남긴 유언으로 한평생 청렴하게 살았으며 오늘날 모든이의 귀감이 되고 있는 말이다.
초등학교 때 배웠던 「최영장군」동요다.
황금을 보기를 돌같이 하라 이르신 어버이 뜻을 받들고~
한평생 나라위해 바치셨으니 겨래의 스승이라 최영장군~
↓주차장에서 600여m 올라가야 한다.
경기도 기념물 제23호
현위치 :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대자동 산70-2
최영장군의 요동정벌 계획과 몰락
공민왕이 죽고 우왕이 왕위에 올랐다.
당시 중국은 명나라가 본토에서 일어나 원나라의 세력을 약화시키고 있던 때였다.
철령 이북의 땅은 원나라가 고려의 땅을 강제로 점령하고 쌍성총관부(雙城摠管府)를 세웠던 곳으로
공민왕때 최영장군이 회복했던 땅이다.
그 땅에 명나라가 철령위(鐵嶺衛)를 설치하고 그들의 영토로 만들려 하자 최영이 우왕에게 요동정벌을 주청한다.
1388년(우왕 14) 최영장군은 팔도도통사(八道都統使)로
좌군도통사에 조민수를 우군도통사(右軍都統使)에 이성계를 임명하여 요동정벌에 나선다.
선발대로 나선 이성계는 친명파로 위화도(威化島)에 이르러 사불가론(四不可論)을 들어
우왕과 최영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회군을 단행한다.
이에 개경으로 돌아온 최영은 이성계의 군대를 막아보려 했지만 결국 역부족으로 이성계에 의해 잡혀 희생되고 만다.
최영이 개경에서 참수될 때 죄목은 "무리하게 요동정벌을 계획하고 왕의 말을 우습게 여기며 권세를 탐한 죄"였다.
이에 최영은 "내 한평생 남의 것을 탐한적 없다.
만약 내가 평생에 있어 탐욕이 있었다면 내 무덤에 풀이 자랄 것이나 결백하다면 무덤에 풀이 자라지 않을 것이다."라고 했다.
그랬다. 최영의 무덤에는 풀이 나지 않았던 것으로 유명하다. 1976년 부터 무덤에 풀이 무성해졌다고 전한다.
↑최영(崔瑩) 장군 묘
봉분은 단분으로 부인 문화유씨와 합장묘이다.
화강암 대리석으로 2단의 호석을 두른 전형적인 고려양식의 방형묘(方形墓)이다.
곡장(曲墻)이 둘러쳐진 봉분의 바로 앞에는 혼유석ㆍ상석ㆍ향로석이 밀착된 채 차례로 놓여 있으며, 그 좌우에는 2기의 묘비가 세워져 있고 봉분 좌우의 묘비 앞에 망주석과 문인석이 각 1쌍이 배열되어 있다.
뒤쪽은 최영장군의 부친 최원직의 묘↓
↑묘역 뒷편에서 바라본 모습
● 안내지도
성령대군(誠寧大君) 묘
↑멀리서 바라본 성령대군 묘역
大慈祠(대자사)
성령대군을 기리는 사당이다.
14세의 어린 나이에 홍역으로 세상을 떠나 태종은 이를 애석하게 여겨 묘옆에 대자암을 짓고 명복을 빌게 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그 때의 대자암은 임진왜란때 소실되어 흔적도 볼 수없게 되었다.
↑永追門(영추문)
이곳 대자사의 정문에 해당하는 문으로 영추문이란 이름이 붙기 전에는 외삼문이라 했던 것으로 안다.
이 문은 삼신문으로 솟을대문으로 이루어져 있고 문마다 붉은 색칠과 각 칸의 두짝씩 판문위에 화살촉 모양의 살을 끼워 고정시켰고 판문마다 태극무늬가 눈에 띈다.
↑大慈祠(대자사)
성령대군의 위패를 모신 곳이다.
↑원천군(原川君) 및 부인묘
처음엔 이곳이 성령대군의 묘인줄 알았다. 성령대군의 묘는 저 위에 있다.
묘역 내를 조심스럽게 접근하다보니 비문을 사진에 담지 못해 정확한 내용을 알지 못한다.
원천군(原川君) 이의(李宜 1433~1476)
성령대군(誠寧大君) 이종(李褈)의 양차자(養次子) : 1459년에 양차자로 출계
생부는 효령대군(孝寧大君) 이보(李補 )의 적6남(嫡六男)
↑묘역 사당
大慈祠(대자사)
후경
대자사 바로 옆에 비각이 있는데 왜 사진에 담지 못했을까?.....
↑성령대군묘
성령대군(誠寧大君) 이종(李褈 1405~1418))
조선 태종의 넷째 아들이다.
성령대군의 위로는 양령대군, 효령대군, 충령대군(세종대왕)이 있다.
성령대군은 14세 때 홍역으로 일찍 세상을 떠났다.
↑성령대군묘비
朝鮮國 第三代 太宗大王 第四代王子 (조선국 제3대 태종대왕 제4왕자)
大匡輔國崇祿大夫 誠령大君 (대광보국숭록대부 성령대군)
卞韓國 昭頃公 領宗正卿府事 (변한국 소경공영종정경부사)
配 三韓國 大夫人 昌寧成氏 (배 삼한국 대부인 창녕성씨)
之墓
↑원천군(原川君) 및 부인묘의 후경
崇祖 敦宗(숭조돈종) : 조상을 숭배하고 종친간에 돈독히 하라는 뜻이다.
오늘의 일터
↑막내가 준비해온 음식들이다....
모두들 고생 많았고 자주 만날 예정이다.